등록 : 2017.01.13 20:10
수정 : 2017.01.13 20:48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영미 합작 드라마 <터부>
거장 리들리 스콧이 제작하고 배우 톰 하디가 주연을 맡은 화제작 <터부>(원제 ‘Taboo’)가 첫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영국 <비비시>(BBC)와 미국 <에프엑스>(FX) 채널에서 동시 방영 중이다. 1800년대 영국 배경 시대극인 이 작품은 톰 하디가 작가인 부친 칩스 하디와 함께 수년 전부터 계획하고 공동 각본에 참여한 사실로도 일찌감치 화제를 모았다. 드디어 베일을 벗은 드라마에서 톰 하디 특유의 거친 카리스마와 광기 어린 연기뿐 아니라 작가로서의 재능까지 확인할 수 있다.
1814년 런던, 오래전 아프리카로 떠난 뒤 죽은 걸로 알려졌던 제임스 케지아 딜레이니(톰 하디)가 부친 호러스 딜레이니(에드워드 폭스)의 사망 소식을 듣고 돌아온다. 사람들은 그가 정신병을 앓았던 모친과 말년에 역시 광기에 빠진 부친을 닮아 미친 사내라고 수군거린다. 제임스 딜레이니는 부친의 시신을 보자마자 죽음에 석연치 않은 지점이 있음을 의심하며, 이윽고 그의 유산을 노리는 자들이 정체를 드러낸다.
<터부>에서 톰 하디의 첫인상은 그가 출연한 드라마 <폭풍의 언덕> 속 히스클리프의 황무지 같은 느낌을 연상시킨다. 폭풍우를 뚫고 나타난 뒤의 어두운 표정과 이단적 분위기는 오랜 부재 기간의 행적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결혼한 이복 여동생 기어리 부인(우나 채플린)과의 사이에 감도는 근친상간적 긴장관계 또한 제목처럼 위험한 치정멜로를 예상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뒤에 전개되는 내용은 계속해서 예상을 벗어난다. 1814년이라는 역사적 시기부터가 의미심장하다. 이해는 영국이 나폴레옹 전쟁과 미국과의 전쟁을 동시에 벌이고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 일대의 지배권을 획득하는 등 패권주의가 극을 향해 가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 아래 딜레이니의 부친이 30년 전 미국 원주민에게 구입한 작은 땅의 실체가 이 패권 경쟁에 매우 중요한 지정학적 요충지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훨씬 거대하고 복잡한 주제를 향해 간다.
아직 전체 8부작의 도입부 단계일 뿐이지만 첫 회에서 딜레이니의 환각 속에 나타난 장면들로 유추해보면 이 작품은 제국주의의 폭력적 역사를 향한 비판의식을 기저에 깔고 있다. 딜레이니의 복잡하고 어두운 가족사 역시 아프리카 흑인, 아메리칸 원주민, 여성 등 피식민 존재들에 대한 폭력과 죄의식이 얼룩진 역사로 확대된다. 다국적 기업 동인도 회사의 횡포 또한 단순한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 다국적 군산복합체의 탐욕을 연상시키는 지점이 있다. 치정멜로를 암시하는 듯했던 제목의 의미가 점점 확장되는 셈이다. 올해 최고 기대작 중 하나다운 흥미로운 서막임에는 틀림없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