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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2.24 20:26 수정 : 2017.02.24 21:13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영국드라마 <아이보이>

고교생 톰(빌 밀너)은 어린 시절 엄마를 잃고 성인 로맨스소설 작가인 할머니 낸(미란다 리처드슨)과 단둘이 살고 있다. 부모 없는 환경과 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가뜩이나 내성적인 톰을 더욱 주변적 존재로 머물게 한다. 어느 날 톰은 어린 시절 친구이자 짝사랑 상대인 루시(메이지 윌리엄스)가 정체불명 집단에게 끔찍하게 성폭행당하는 현장을 발견하고 경찰을 부르기 위해 달아나다 총에 맞는다. 총알은 다행히 그를 비껴나가 긴급통화를 시도하던 스마트폰을 맞히고 그 파편이 머리 깊숙이 박힌 톰에게는 기이한 변화가 일어난다. 생각만으로도 눈앞의 전자기기를 조종하고 세상의 데이터를 모두 읽을 수 있는 슈퍼파워가 생긴 것이다. 톰은 초능력을 이용해 루시 사건의 범인들을 추적하고 자신만의 복수를 꾀한다.

넷플릭스의 신규 오리지널 티브이 영화 <아이보이>는 흥미로운 설정과 시의성이 돋보이는 청소년물이다. <비비시>(BBC)의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 기념드라마 <아워 월드 워>와 영·미 합작 에스에프 드라마 <휴먼스> 시리즈로 호평받은 작가 조 바턴이 영국 작가 케빈 브룩스의 청소년 소설을 각색해, 스마트폰 만능 시대의 십대 슈퍼히어로를 탄생시켰다. 소심하고 고독한 ‘흙수저’ 소년 톰이 우연히 초능력을 갖게 되는 이야기는 토비 매과이어 버전의 ‘스파이더맨’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지만, <아이보이>는 여기에 현재 영국 청소년들이 처한 인종, 지역, 계급 등의 다층적 갈등을 좀더 부각한다. 갈수록 삶의 가능성이 축소된 세계를 살아가는 청소년에게 최대의 오락매체 역할을 하는 스마트폰은, 이 드라마 안에서 슈퍼파워를 지니게 된 주인공이 십대의 응축된 분노를 표현하는 데 적절한 소재로 활용된다.

치명적 단점이 있다면 루시의 역할이 기존 슈퍼히어로물 장르 속 ‘히어로 여자친구’의 한계를 그대로 되풀이한다는 점이다. 드라마 안에서 현재 영국 청소년들의 어두운 현실을 드러내는 역할은 모두 남자청소년들이며, 루시는 그 남성 중심적 세계의 희생양인 동시에 톰의 거침없는 분노에 제동을 거는 순화의 역할까지 맡는다. 다만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시리즈의 아리아 스타크로 이름을 알린 메이지 윌리엄스의 깊이 있는 연기가 캐릭터의 아쉬움을 그나마 상쇄한다. 영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서 어린 매그니토 역으로 뚜렷한 각인을 남긴 빌 밀너의 소심함과 강렬한 분노를 오가는 표정도 꽤 좋다. 초반의 인상적 설정에 비해 허술해지는 후반부에서도 두 배우의 신선한 얼굴과 연기가 시선을 계속해서 붙잡는다.

국내 시청자들에게는 스마트폰이 일제히 폭발하는 클라이맥스의 한 장면에서 익숙한 발화사고가 연상되는 남다른 관전 포인트도 있다. 부패한 대기업의 스마트폰 제조 하청노동자가 배터리 폭발사고로 초능력을 얻고 부조리한 자본권력에 복수하는 노동자 슈퍼히어로물, 아주 잠깐 상상해봤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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