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3.24 20:26
수정 : 2017.03.24 20:31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미국 드라마 <골리앗>
드라마는 한 배의 침몰 사고로 시작된다. 급작스러운 폭발음과 함께 가라앉은 배에는 한 남자가 타고 있었고,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연료기관 고장에 의한 사고 가능성을 제기한다. 때마침 남자의 집에서는 자필 유서가 발견되면서 자연스레 자살인 것으로 결론이 난다. 2년 뒤 사람들에게 까맣게 잊힌 사건은, 동생의 죽음에 의문을 품은 누이 레이첼 케네디(에버 캐러딘)가 변호사 빌리 맥브라이드(빌리 밥 손턴)에게 소송을 의뢰하면서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른다. 레이첼은 동생이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고, 빌리 역시 사건의 이면에 심상치 않은 음모가 가라앉아 있음을 알아챈다.
<골리앗>은 한 남자의 비극적 죽음 뒤에 은폐된 거대 로펌과 기업의 어두운 진실을 파헤치려는 변호사의 끈질긴 싸움을 그린다. 넷플릭스와 더불어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의 강자로 떠오르며 수준 높은 자체 제작 시리즈를 늘려가고 있는 아마존의 신작이다. 오스카상 수상자인 윌리엄 허트와 빌리 밥 손턴이 주연을 맡았고, 법정물의 대가인 데이비드 이 켈리와 <보스턴 리걸>의 공동 프로듀서 조너선 셔피로가 제작에 참여해 방영 전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8부작이 모두 공개된 뒤에는 예상한 대로 큰 호평이 이어졌고, 연초에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빌리 밥 손턴이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실 정의롭고 인간미 넘치는 법조인이 거대 권력의 냉혹한 음모와 맞서 싸우는 이야기는 이미 차고 넘친다. 하지만 <골리앗>은 이러한 종류의 서사가 흔히 빠지게 마련인 손쉬운 영웅 판타지와는 거리를 둔다. 왕년에 잘나가는 변호사였다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몰락하며 “쓰레기”로까지 불리는 빌리는 결코 이상적 주인공이라 볼 수 없고, 이야기 역시 “법정에선 법리로 싸워야 한다”는 대사처럼 치밀하고 무거운 법정 공방으로 다소 느리게 전개된다. 그만큼 극적인 반전에 의한 카타르시스에 의존하기보다 ‘진실을 증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며 복잡한 현실을 다각도로 들여다보게 하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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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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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골리앗>의 미덕은 마지막 회에서 여러 소송 쟁점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짚어나가는 배심원 평결 장면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별 볼 일 없는 변호사와 탐욕스러운 거대 기업의 싸움은 얼핏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처럼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선악의 갈등 같지만, 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저마다의 윤리적 시각을 지닌 개개인들의 치열한 토론 끝에 때로는 불완전한 모습으로 도출된다. 그러나 빌리는 바로 여기에 법이 위대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뛰어난 검사나 변호사들의 영웅적 활약에 의해 쉽게 드러나는 진실은 판타지다. 그런 면에서 드라마의 제목 <골리앗>은 거대한 현실의 벽을 지칭함과 동시에 다윗의 작은 팔맷돌이 모여 만든 크나큰 진실의 가치를 의미한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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