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9.08 20:54
수정 : 2017.09.09 10:44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 드라마 <휠체어로 나는 하늘을 날았다>
지난해 방영된 한국방송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는 신드롬급 인기를 끌었던 주인공 캐릭터보다 어쩌면 더 의미있는 등장인물 하나가 있었다.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병리과 전문의 표지수(현쥬니)다. 그녀는 흔히 장애인 캐릭터에 부여되곤 하는 그 어떤 비극적 사연이나 부정적 묘사도 없이 그저 주인공의 ‘자연스러운’ 동료이자 개성적인 인물로 그려졌다. 물론 ‘의사로서의 역할이 거의 없는 장식에 불과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장애인이라는 존재를 아예 지워온 기존의 드라마들을 생각해볼 때 상대적으로 호평할 수밖에 없다. 한 예로 지난 5월 방송통신위원회가 발간한 <미디어 다양성 조사연구> 보고서를 보면 국내 드라마의 장애인 캐릭터 등장 비율은 고작 1.6%였다. 국내 방송에서는 장애인 묘사를 평가하기 전에 등장 자체가 희소한 일이다.
일본 드라마를 볼 때 제일 부러운 것은 적어도 장애인 묘사에서는 여기보다 진일보했다는 점이다. 장애인의 삶을 주제로 한 작품들은 이미 오랜 계보를 축적해가고 있고, 트렌디 드라마에서 다수의 주인공 중 하나로 장애인 캐릭터가 포함되는 사례도 많다. 이 많은 사례 가운데서도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으로는 2012년 일본 <엔티브이>에서 방영된 특집 드라마 <휠체어로 나는 하늘을 난다>가 있다. 주인공 하세베 야스유키(니노미야 가즈나리)는 스스로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답 없는 청춘이다. 사고가 난 그날도 술집에서 시비가 붙어 도망치던 중이었다. 건물에서 추락한 그는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는다. 고독과 절망의 나날들 속에서 방황하던 하세베는 결국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생이 시작”되었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전체적인 줄거리만 보면 장애인의 좌절과 극복을 그린 전형적인 재활기에 가깝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국내 드라마로는 옮길 수 없는 이야기다. 하세베 재활 성공 뒤에는 공동체 사회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크게 강조하지 않아도 하세베가 새로 이사한 집의 ‘문턱 없는 입구’처럼 장애인에 대한 일본 사회의 지원 시스템이 드라마 속 일상에 녹아들어 있다. 시민들의 태도도 인상적이다. 휠체어를 탄 하세베가 거리로 나갈 때 사람들은 당연한 것처럼 그의 이동을 돕는다.
물론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에서 소외된 한 장애인의 죽음처럼 여전히 비극적인 현실의 벽도 묘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최소한 ‘사회적 약자에게는 도움이 필요하며, 또 그것이 차별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상식이 합의된 사회에 기반하고 있다. 장애인 자녀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무릎까지 꿇은 부모들에게 야유가 쏟아지는 이곳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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