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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3.09 20:03 수정 : 2018.03.13 10:23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이스라엘 드라마 <샌드 스톰>

사진 넷플릭스

중년의 베두인 여성 자릴라(루바 블랄)는 부족의 관습에 따라 남편의 두번째 결혼식을 준비해야 한다. 남편 술리만(히탐 오마리)은 결혼식이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부족의 전통 때문이라고 변명하면서도 젊은 새 부인을 위해 직접 집을 짓고 침실을 공들여 꾸미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여기에 큰딸 라일라(라미스 아마르)마저 학교에서 만난 다른 부족 소년과 연애를 하고 차를 운전하는 등 자유분방한 태도로 마을의 금기를 어기며 자릴라를 힘들게 한다.

넷플릭스가 2016년 제작한 이스라엘 드라마 <샌드 스톰>(원제 ‘Sufat Chol’)은 이스라엘의 베두인 마을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베두인 사회는 기본적으로 강력한 가부장제가 지배하는 세계이며, 그 안의 여성들은 아내, 엄마, 딸로서의 역할만을 강요받는다. <샌드 스톰>은 새로운 세대의 여성들이 그 억압적 인습과 어떻게 충돌하고 주체적 삶을 갈망하는가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히잡을 쓴 라일라가 한 손으로는 차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첫 장면부터가 구습과 혁신의 교차를 예고한다. 라일라는 가부장제에 종속된 엄마 자릴라를 연민하면서도 절대 그와 같은 삶을 살지는 않겠다고 다짐하는 전형적인 신세대 딸이다. 순종적이고 고리타분한 엄마보다는 자신에게 운전을 가르쳐주고 학교 성적에도 엄격한 아빠가 차라리 더 합리적이고 자신과 잘 통하는 존재라고 여긴다.

<샌드 스톰>에서 제일 인상적인 순간은 부모에 대한 라일라의 이러한 생각이 어떠한 계기로 인해 완전히 뒤바뀌게 되는 전환점에서 나온다. 술리만은 그동안 너그러운 가장의 가면 뒤에 숨겨왔던 남성 중심적 시선의 폭력성을 드러내고, 자릴라는 히잡으로 가려왔던 자신의 주체적인 얼굴을 드러내며 남편의 위선과 모순을 공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은 결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가부장제의 노골적인 민낯을 목격한 라일라의 최종 선택은 여성들을 옭아매는 인습의 무게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말해준다. 다만 드라마는 자릴라의 어린 둘째 딸 타스님(카디자 알아켈)의 또 다른 시선을 통해 미래 세대를 위한 분명한 희망을 남긴다.

연출을 맡은 일리트 젝세르 감독은 이 영화에 앞서 발표한 두 편의 단편에서도 일관되게 여성주의적 관점을 선보인 바 있다. <샌드 스톰>은 두번째 단편 ‘타스님’에서 그려냈던 베두인 소녀의 이야기를 한층 깊이있게 발전시킨 그녀의 첫 장편작이다. 비록 본인은 이스라엘 출신이지만 십년간 베두인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여성들의 억압적 삶에는 국경이 따로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할 만한 작품으로 강력 추천한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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