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4.13 19:25
수정 : 2018.04.13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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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브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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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 드라마 <시그널 장기 미제 사건 수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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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브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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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들어 2분기 일본 드라마 라인업이 대부분 공개된 가운데 국내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 두 편이 눈에 띈다. 지난 11일부터 일본 케이티브이(KTV)에서 방영을 시작한 <시그널 장기 미제 사건 수사반>과 후지 티브이 넥스트에서 3월 말부터 방영 중인 <기억>이다. 이들은 2016년 국내 케이블 채널 티브이엔(tvN)에서 나란히 공개된 <시그널>과 <기억>을 각각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공교롭게도 두 원작 모두 세월호 참사를 연상케 하는 내용으로 반향을 일으킨 작품들이기에, 세월호 4주기를 앞둔 시점에서 리메이크 방영 소식이 각별하게 다가온다.
이 중 국내 시청자들이 좀 더 주목하는 작품은 <시그널 장기 미제 사건 수사반>이다. 원작부터가 신드롬을 불러일으킨데다, 국내에서도 팬층이 두터운 청춘스타 사카구치 겐타로가 주연을 맡았고, 인기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이 주제곡을 부르는 등 여러모로 화제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15분 확대 편성으로 내보낸 첫 회 역시 기대한 것보다 원작을 충실히 따랐다. 리메이크 계약 조건인지 주요 인물들의 스타일링까지 흡사할 정도다. 국내판 주연 배우 이제훈의 백팩, 김혜수의 짧은 머리 등 트레이드마크와 심지어 김원해의 목베개까지 그대로 재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과의 결정적 차이점은 역시 세월호 참사 모티브에서 발견된다. 원작이 미제 사건을 소재로 한 근본적 원인은 치유받지 못한 사회적 상처에 있었다. 김은희 작가는 <시그널> 종영 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다면 그게 미제 사건”(한국일보)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실제로 원작 드라마는 첫 사건부터 진범을 찾는 수사 과정 못지않게 15년 동안 진실이 밝혀지길 바라며 매일같이 경찰서 앞에서 시위를 해왔던 유족의 아픔을 집요하게 그려냈다.
“미제 사건이 왜 엿 같은 줄 알아? 범인이 누군지, 동기가 뭔지, 모든 게 밝혀진 사건은 힘들어도 가슴에라도 묻을 수 있지만, 미제 사건은 내 가족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왜 죽었는지도 모르니까 잊을 수가 없는 거야. 하루하루가 지옥 같지.” 정부 차원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은폐하고 유족들의 목소리를 탄압하던 시기에 주인공 차수현(김혜수 분)의 대사는 수많은 이들의 분노를 대신했다.
이러한 시대적 맥락이 제거된 일본판에서는 장르적 완성도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15년 전의 미제 사건인 초등학생 유괴 살해 사건을 다룬 첫 회에서는 공소시효가 주는 수사의 긴장감,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부각하는 연출 등이 돋보였다. 원작에서 차수현, 박해영(이제훈 분), 이재한(조진웅 분) 등 형사 세 명이 대등하게 이끌어가던 이야기는 젊은 형사 사에구사 겐토(사카구치 겐타로 분)를 중심으로 정리됐다. 대신 부패한 경찰 고위 간부 역을 맡은 와타베 아쓰로의 무거운 존재감이 한층 팽팽한 대립구도를 보여준다. 꽤 수준급 리메이크지만, 보고 나면 원작이 더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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