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6.24 10:15
수정 : 2018.06.24 11:52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 드라마 <감사법인>
일본 드라마에서 ‘경제’는 꽤 인기 있는 소재다. 경제드라마가 하나의 장르를 형성할 정도다. 일본 드라마 특유의 교훈적, 계몽적 메시지를 녹여 넣기 좋은 소재인데다, 경제대국으로의 급성장에서부터 거품경제 붕괴까지 극적인 이야깃거리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다루는 경제 분야도 다양하다. 가령 일본 드라마 역대 최고의 흥행작인 <한자와 나오키>는 은행업계, 역대 최고의 경제드라마로 호평받는 <하게타카>는 기업 인수합병 분야, 마니아층이 두터운 <사채꾼 우시지마>는 사채업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2008년 <엔에이치케이>(NHK)에서 방영한 <감사법인>은 회계업계를 소재로 한 드라마다. 특히 거품경제 붕괴 시기에 기업들의 외부감사를 담당한 공인회계사들의 시선을 통해 당시 일본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주인공 와카스기 겐지(쓰카모토 다카시)는 거품경제 붕괴 이후 구직난에 시달리던 일본 청년들을 뜻하는 ‘로스제네’ 혹은 ‘취업 빙하기 세대’다. 바텐더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는 가게 단골손님이던 전설적 회계사 시노하라 유조(하시즈메 이사오)와의 만남으로 회계사의 꿈을 품는다. 독학으로 회계사가 된 그는 시노하라가 이사장으로 있는 일본 최대 감사법인에 입사하지만 불황의 늪에 빠진 기업과 엄격한 감사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감사법인>은 정확하게 2001년부터 2004년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현실에선 고이즈미 내각이 ‘잃어버린 10년’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대대적인 구조개혁을 벌이던 때다. 거품경제 붕괴 뒤 회계법인 역시 그동안의 부실감사 책임과 개혁의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드라마는 와카스기 겐지의 외부감사를 통해 당시 은행, 기업, 회계사들이 유착해 오랜 세월 저질러온 다양한 불법행위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일본의 경제발전은 운명공동체로서 협력한 자신들이 이뤄낸 것이라 주장하는 고도성장기 세대와, 낡은 관행을 뿌리 뽑아야 재건도 가능하다는 개혁 세대의 대립이 드라마의 주된 갈등 구조다. 드라마 방영 시기가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다시 일본 사회가 흔들리던 때임을 생각하면, 그 중간에서 타협점을 찾아가는 결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감사법인>은 경제드라마 이전에 직업드라마로서도 인상적인 작품이다. 정의감과 인간미를 두루 갖춘 주인공 와카스기 겐지 외에도 고도성장기 세대로서 일관된 신념을 유지하는 시노하라 유조, 개혁파 리더로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오노데라 나오토(도요하라 고스케), 신중한 관찰자 입장에서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는 야마나카 아카네(마쓰시타 나오) 등 주요 캐릭터들이 끊임없이 ‘회계사란 어떤 존재인가’를 질문하며 치열한 윤리의식을 보여준다. 벌써 10년 전 작품이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으로 회계 투명성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우리나라에서 지금 본다면 더욱 흥미로울 작품이다.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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