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2.15 09:59
수정 : 2018.12.15 11:14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 드라마 <오렌지~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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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드라마, <오렌지~1.17 결사적으로 싸운 소방관의 영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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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대 출신의 엘리트 청년 야마쿠라(구도 아스카)는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다. 고베 소방서의 신입 대원이 된 야마쿠라는 그의 지도를 맡은 상사 고히나타(가미카와 다카야)와 갈등을 겪는다. 현장에서 일분일초라도 빨리 사람을 구하는 게 우선이라는 고히나타와 달리, 야마쿠라는 이론에 충실해야 더 안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히나타는 야마쿠라에게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마음이 없다면 소방대원은 힘들 거라며 차라리 그만두라고 이야기한다. 신입 대원들을 대상으로 한 20일간의 특별 구조훈련이 시작되자, 대부분의 신입이 고히나타의 강훈련에 불만을 품는다. 오묘한 분위기를 눈치챈 소방 중대장 사쿠라이(스기모토 뎃타)는 대원들에게 한신·아와지 대지진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2015년 일본 티비에스(TBS)가 방영한 <오렌지~1.17 결사적으로 싸운 소방관의 영혼 이야기>는 한신·아와지 대지진 20주년을 맞아 제작된 스페셜 드라마다. 대지진 때 피해가 가장 컸던 고베 지역 소방서를 배경으로 특별 구조대원들의 분투와 애환을 그렸다. 고베 지역의 피해가 유독 컸던 것은 지난 400년 동안 지진이 거의 없던 지역이어서 사전에 충분한 대비를 하지 못한데다 내진 기준 강화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이 많았기 때문이다. 드라마에는 당시 지진 현장을 맞닥뜨렸던 소방대원들의 참담함이 생생하게 반영되어 있다. 실제로 한신·아와지 대지진을 경험한 소방대원 수백명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진 연극이 원작이다. 제목은 인명 구조를 위해 특수 훈련을 받은 구조대원들이 입는 복장의 색깔에서 유래했다.
사쿠라이가 신입 대원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기사나 뉴스로만 전해들었던 기록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이다. 붕괴가 너무 심한 탓에 중장비 없이 구조가 힘들어 눈앞에서 죽어가는 시민들을 보고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 인력과 자원의 한계 때문에 구조 확률이 높은 시민들을 먼저 구하라는 명령으로 부상이 심한 사람들을 외면해야 했던 상황 등, 지역의 8할이 무너진 압도적인 참사 앞에서 무력감과 비참함을 느끼는 대원들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대원들 본인 가족의 생사조차 모르는 가운데 ‘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도 구하지 않느냐’는 시민들의 원망과 울음은 더 큰 고통이었다.
요컨대 이 드라마는 소방대원들의 영웅적 활약을 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극을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한 자들로서 소방대원의 시선을 통해 살아남은 자들에게 주어진 과제와 역할을 환기하는 작품이다. “내일 당장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가치 있게 보내고 주변의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라”는 이야기는 흔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온몸으로 체험한 영웅들의 입으로 전해지기에 울림을 지닌다. 소방대원들이 가장 바쁘다는 연말이다. 작품의 메시지를 되새기면서 국내 소방대원들의 환경에 대해서도 떠올려 보게 된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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