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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10 19:26 수정 : 2019.05.10 19:47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2015년 6월14일 미국 미주리주, 911에 한 신고 전화가 걸려온다. “이웃 모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아요!” 옆집에 산다는 신고자 레이시(애나소피아 롭)는 이어 모녀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라왔던 끔찍한 글을 언급한다. “내가 그 돼지를 도살했다.” 즉시 출동한 경찰은 어둡고 추운 집 안에서 등을 찔린 채 엎어져 있는 주검을 발견한다. 죽은 이는, 아프고 장애가 있는 딸을 홀로 보살펴온 디 디 블랜차드(퍼트리샤 아켓)였다. 그리고 경찰은 딸 집시 블랜차드(조이 킹)를 그 살인 용의자로 지목한다. 도대체 모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지난 3월부터 미국 <훌루>에서 방영 중인 <디 액트>(The Act)는 진작부터 큰 화제를 모은 드라마다. 2015년 미국 사회 전체를 충격에 빠뜨린 집시 로즈 블랜차드 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집시 로즈와 디 디 블랜차드는 하반신 장애, 희귀병으로 고통받는 딸과 그녀를 헌신적으로 돌본 싱글맘으로 지역 사회와 미디어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그 애틋한 사연의 이면에는 음울한 비밀이 숨어 있었다. 집시 로즈는 건강에 이상이 없었고, 디 디 블랜차드는 딸을 일부러 환자 취급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유도한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이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실제 나이도 몰랐을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학대를 당해온 집시 로즈는 결국 극단적인 방법으로 엄마의 통제에서 벗어났고, 현재 살인죄로 교도소에 있다.

이 비극적 사건은 벌써 두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되었을 만큼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디 액트>는 이를 본격적으로 극화한 첫 미니시리즈다. 소재의 화제성과 퍼트리샤 아켓, 조이 킹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일찌감치 주목받았지만,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실화를 실명까지 그대로 사용해 극화한 데에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막상 공개된 드라마를 향한 평단과 대중의 반응은 호평이 압도적이다. 드라마는 많은 미스터리를 남기고 숨진 디 디 블랜차드보다는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심경을 밝혀온 집시의 심리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엄마와 둘만의 세계에 갇혀 있던 집시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자신의 세상에 서서히 의심을 키워가는 내면의 변화가 섬세하게 그려진다. 그러한 집시를 예민하게 관찰하고 학대하면서,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디 디 블랜차드의 분열적 드라마가 그 위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운다.

블랜차드 모녀의 사건은 사회적 비극이기도 하다. 많은 이가 관심을 가지고 후원했으나 정작 모녀가 어떻게 망가져갔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 이야기는 초연결사회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첫 회에서 과거의 이야기가 모녀의 언론 인터뷰 장면으로 시작하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사회적 지원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싱글맘 가정의 사연에 대중매체가 투영한 디즈니 동화 같은 판타지는 오히려 그 안의 잔혹한 학대와 소외를 가리는 데 일조했다. 드라마 제목이 의미하듯, 모녀는 그 판타지에 맞춰 모범적인 연기를 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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