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17 19:33
수정 : 2019.05.17 19:41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 드라마 ‘남편의 그것이 들어가지 않아’
대학 진학과 함께 고향을 떠난 구미코(이시바시 나쓰미)는 처음으로 자취생활을 시작한다. 낯선 아파트에서 교육학과 선배 겐이치(나카무라 아오이)를 만난 구미코는 허물없이 다가오는 그에게 금세 마음을 연다. 자연스럽게 연인이 된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부딪힌다. 애정에는 전혀 이상이 없는데 육체적 관계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은 결혼에 이르지만,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문제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부부생활에 점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일본 드라마 <남편의 그것이 들어가지 않아>를 접하는 이들은 보통 세번 놀라게 된다. 그 파격적인 제목에 한번 놀라고, 다음으로 이것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는 데 충격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도발적인 제목과 달리 인간 내면과 결혼의 근본적 의미를 진지하게 탐색하는 작품이라는 데 가장 놀란다. 원작자 고다마는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들었던 개인적인 체험을 문예동인지의 동명 기고글을 통해서야 토로할 수 있었고, 이 솔직하고 담담한 고백은 독자들의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2017년 동명의 단행본 에세이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고, 넷플릭스에 의해 드라마로까지 만들어졌다.
드라마에서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주인공 구미코 역은 이시바시 나쓰미가 맡았다. 그는 올해 초 엔에이치케이(NHK) 드라마 <좀비가 왔으니까 인생을 되돌아보고>에 이어 또 한번 결혼생활의 파탄을 맞고 삶을 돌아보는 주인공을 연기하게 됐다. 어린 시절 불행한 결혼생활을 이어간 부모 아래서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구미코는 겐이치를 만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날 좋아하다니 내겐 처음 있는 일”이라며 감격한다. 고등학교 시절 경험한 첫 육체적 관계가 아무런 감정이 없는 상태에서 통과의례처럼 치러졌기에, 구미코는 겐이치와 육체적 관계가 어렵다는 사실보다 그러한 관계 없이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더 특별한 기적처럼 여긴다. “육체적으로 친밀해지는 대신, 우리는 정서적으로 한결 가깝다. 우리는 행복하다.”
그러나 두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단지 육체적인 문제만이 아니었다. 성애적 관계 중심의 세상, 양가 부모와 아이 중심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등 소위 ‘일반적’인 삶과의 괴리와 소외는 부부에게 계속해서 억압과 부담으로 다가온다. 구미코와 겐이치는 ‘그것 없는’ 부부생활이 비정상적이고 결핍된 삶이 아니라 그저 조금 다른 삶일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그들 자신도 많은 갈등과 시련의 시간을 보낸다. 그 과정에서 시청자들도,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일탈’적 행위에 충격을 받으면서 계속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것’이 무엇이든, 모두가 ‘그것’ 하나쯤은 없는 삶을 살아간다. ‘정상’적인 삶은 어떤 삶인가.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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