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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07 10:06 수정 : 2019.09.07 10:41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SBS 단편드라마 ‘17세의 조건’

고등학생 민재(윤찬영)는 엄마 정경(서정연)이 불안하다. 정경이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다는 의심에 공부도 잘 안 된다. 민재 마음을 모르는 정경은 민재에게 한달에 120만원짜리라는 고액 수학 과외를 시켜준다. 민재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동갑내기 서연(박시은)도 엄마 해영(이항나)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서연이 예술고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한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는 해영은 서연의 음대 입학에 인생을 건 듯이 집착한다. 생리통을 앓던 서연이 다시 시험을 망칠까 피임 시술까지 권할 정도다. 산부인과 의사는 불안해하는 서연에게 “요새 입시생들이 많이 한다”고 태연하게 이야기한다. 각자의 사정으로 고민하던 서연과 민재는 어느 날 학교가 아닌 뜻밖의 장소에서 마주치게 된다.

지난달 <에스비에스>(SBS)에서 방영된 2부작 <17세의 조건>은 한동안 티브이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정통 청소년 드라마다. 근래 들어 <한국방송>(KBS)의 <땐뽀걸즈>, <제이티비시>(JTBC)의 <열여덟의 순간> 등 주목할 만한 청소년 드라마가 잇달아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17세의 조건> 역시 탄탄한 완성도와 진지한 문제의식을 갖춘 작품으로 눈길을 끈다. 2018년 <에스비에스> 극본공모에 당선된 류보리 작가가 쓴 이 작품은 주민등록증이 발급되는 나이인 만 17세의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10대들 사이의 흔한 ‘첫사랑’ 코드도 없이, 어른과 아이의 경계선에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위태로운 심리에 초점을 맞춘 밀도 높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17세의 조건>에서 먼저 시선을 잡아끄는 대목은 파격적인 소재다. 부모의 이혼으로 방황하던 서연은 원조교제를 시작하고, 민재는 수학 성적 상승에 대한 보상으로 과외 선생이 비밀리에 주선한 ‘조건 만남’에서 서연과 마주친다. 그동안 원조교제, 10대 임신, 약물중독 등의 과감한 소재를 통해 10대들의 어두운 현실을 담아내려 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2015년 <제이티비시>의 <선암여고 탐정단>이 고등학생들의 동성 키스신을 내보냈다는 이유로 법정제재를 받은 것처럼 청소년 드라마에 대한 심의 규제가 보수적인 상황에서, 불편한 현실을 과감하게 그리는 것은 여전히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더욱이 <17세의 조건>은 소재의 파격성에 머물지 않고 이를 어른들의 폭력을 투영하는 거울로 활용함으로써 기성세대의 반성을 촉구한다. 가령 서연의 원조교제는 해영과 만나는 남자들이 하나같이 서연을 성추행하는 현실에 대한 반항과 좌절의 결과다. 입시를 위해 억지로 피임 시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서연의 신체는 아직 자신의 의지와 통제 아래 있지 않다. 이는 민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과외 교사는 민재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성매수를 권유하고, 놀란 민재가 이를 거부하자 미리 받아놓은 ‘보안 각서’를 들이밀며 비밀 유지를 요구한다. 드라마는 그렇게 추악한 얼굴을 감추고 ‘학생의 본분’을 강조하는 어른들을 향해 되묻는다. 과연 ‘어른의 조건’은 무엇이냐고.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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