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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08 19:14 수정 : 2019.11.09 02:31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한국방송>(KBS) 드라마스페셜 <그렇게 살다>

전직 강력계 형사 성억(정동환)은 퇴직 후 심각한 생계 곤란을 겪고 있다. 노후의 희망이던 퇴직금과 공무원연금은 주택담보대출금과 함께 아들의 사업 빚으로 사라졌고, 관리비와 각종 공과금도 밀린 상태다. 일자리를 구해보려 주민센터에 가봐도, 불황으로 40대까지 가세한 경쟁에서 노인들에게는 전단 돌리기 같은 단기 아르바이트만 겨우 주어질 뿐이다. 병원비 장기 미납으로 퇴원한 치매 아내를 데리고 집에 오던 날, 그를 맞이한 것은 퇴거통지서였다. 그야말로 길바닥에 나앉기 직전, 기적처럼 취직 기회가 찾아온다. 희망에 부푼 것도 잠시, 성억은 일을 따내려고 자신보다 처지가 어려운 경비원을 밀어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상파에 단 하나 남은 단막극 시리즈 <한국방송>(KBS) 드라마스페셜이 올해도 돌아왔다. 총 10부작 편성으로 방영을 시작한 이 시리즈는 주거 및 고용 불안, 아동학대, 성 소수자 차별, 노인 빈곤 등 우리 사회 다양한 그늘을 응시하면서, 자본과 유행에 물들지 않는 단막극만의 고유한 문제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중에서도 4번째 작품으로 방영된 <그렇게 살다>는 초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 중인 우리나라의 심각한 노인 문제를 냉정하게 들여다본 작품이다.

주인공 성억은 안정된 직장에서 모범상과 청백리상을 받을 만큼 정직하게 살아왔고, 가족들에게도 성실한 가장이었다. 하지만 아내 태숙(이칸희)에게 치매가 찾아오고, 아들의 빚으로 아파트와 연금까지 잃게 되자 순식간에 극빈층으로 전락한다. 당장 아내의 약값과 생계가 걱정이지만, 공무원연금을 일시금으로 수령해 기초연금과 노령연금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 그와 경비 자리를 놓고 경쟁자가 된 병모(김기천)는 중증 천식에 폐암 말기 환자임에도 지병이 있는 아내의 치료비 때문에 일자리가 절실하다. 자식들은 부모를 돕기는커녕 아버지의 사망보험금까지 노린다.

성억과 병모의 사례가 다소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드라마에는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상대빈곤율 1위, 자살률 1위라는 우리나라 노인 문제의 어두운 현실이 촘촘하게 반영되어 있다. 성억이 취업을 알아보러 간 주민센터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라도 얻기 위해 번호표를 뽑고 줄줄이 대기 중인 이들의 모습처럼 치열한 노인 일자리 경쟁, 힘들게 일자리를 구하더라도 체력, 질환, 열악한 근무 조건 등으로 오래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 복지정책의 구멍을 가족이 메우는 구조 등 빈곤층으로 떨어진 노인들이 좀처럼 삶의 출구를 찾기 힘든 현실이 보는 내내 숨통을 조여온다. 평생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성실히 의무를 다해왔음에도, 노년에 들어서면서 최소한의 삶의 존엄을 지키기 어려워진 성억의 모습은 코앞으로 다가온 우리 사회의 미래에 섬뜩한 경고를 전해준다.

김선영 ㅣ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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