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21 13:25
수정 : 2019.12.21 13:26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 드라마 <원죄사형>
일본 교토에서 유괴사건이 발생한다. 피아노 학원을 마친 10살 여자아이가 엄마를 기다리는 사이 일어난 일이었다. 경찰은 몸값을 요구하는 유괴범을 잡기 위해 약속 장소에 잠복하지만, 범인의 치밀한 계략으로 몸값만 뺏기고 만다. 2개월 뒤 아이는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미궁에 빠진 수사는 목격자가 나타나면서 급물살을 타고 경찰은 마침내 유력한 용의자를 체포하는 데 성공한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나고, 당시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 온다(시이나 깃페이)는 한 변호사의 방문을 받는다. 유괴범의 변호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경찰의 조작설을 주장하며 사건 뒤에 은폐된 진실을 밝혀달라고 부탁한다.
2013년 티브이(TV)아사히에서 방영한 일본 드라마 <원죄사형>은 제목 그대로 억울한 죄, 즉 원죄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일본의 형사사법제도는 100%에 가까운 유죄율을 자랑하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 지점에서 원죄 피해자들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99.9%의 유죄율이라는 놀라운 수치는 결국 기소 자체가 죄와 무관하지 않다는 믿음으로 쉽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으로 인해 대중문화계에서도 원죄 피해자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 가운데 <원죄사형>은 주로 검사, 형사 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사법제도의 모순을 비판한 기존 작품들과 달리, 기자의 시선을 통해 그 부조리에 동참하는 언론의 문제를 반성한다는 데 차별점이 있다.
주인공 온다는 발로 뛰는 취재와 철저한 검증이라는 원칙을 지키려 노력하는 성실한 기자다. 강력사건이 발생했을 때 자신의 기사가 피해자들의 상처를 자극하지는 않을지 돌아볼 줄 아는 윤리의식도 지녔다. 가령 3년 전 교토 유괴사건을 취재할 무렵 그는 유족들로부터 “범인을 죽이고 싶다”는 격앙된 반응을 끌어내고 만족스러워하는 후배 기자에게 “조심해야 한다”고 일침을 놓는다. 그는 기자들이 대중의 관심을 쉽게 끌어내기 위해 피해자들의 고통을 이용하려는 시도를 늘 경계한다.
하지만 그러한 온다조차 특종을 향한 욕망은 쉽게 떨쳐버리기 어렵다. 아무리 유죄가 명백해 보이는 용의자일지라도 조금의 무죄 가능성이 있다면 철저하게 파헤쳐야 한다는 그의 원칙은 특종의 욕망과 결합하면서 종결된 교토 유괴사건을 다시 수면 위로 올리게 된다. 온다는 취재를 통해 경찰이 사건 당시 결정적인 증거를 조작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때마침 또 다른 용의자가 등장하면서 교토 유괴사건은 희대의 원죄 피해 사건이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진다. 하지만 그 뒤에는 온다도 몰랐던 함정이 존재했다.
<원죄사형>은 한 성실한 기자의 치명적인 과오와 반성을 통해 언론의 문제를 그린다. 엄격한 검증보다 속보를 더 중요시하고, 특종을 위해 인권 침해 가능성은 가벼이 여기는 언론의 한계가 일본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다만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희망이 있다면, 온다는 자신의 기사에 끝까지 책임을 지려 한다는 점이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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