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5.14 18:49
수정 : 2006.06.0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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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 진주산업대 산업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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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살림 가족살림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매긴 한국의 국가경쟁력 순위가 29위에서 38위로 떨어졌다. 일본은 물론 중국·인도·타이도 우리의 앞자리에 있다. 기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한국의 경쟁력을 갉아먹었다는 진단에, 해고를 자유롭게 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없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처방으로 제시된다. 정말 그런가?
우선 ‘국가경쟁력’이란 개념 자체에 문제가 있다. 국가와 기업은 전혀 다른 단위이므로 경쟁력 개념을 국가에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한 나라의 경제적 어려움을 세계시장에서의 취약한 경쟁력 탓으로 돌리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평가방법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국제경영개발원은 네 부문을 대상으로 128개의 객관적 자료와 113개의 설문조사에 의존해 국가별 순위를 매기는데, 응답자들의 주관에 좌우되는 설문이 너무 많다. 응답자들도 재계 인사로만 구성되어 있어, 노동자·소비자 등의 시각이 배제될 뿐 아니라 전문가의 평가도 담기지 못한다.
국제경영개발원의 평가를 보면, 한국은 노동시장 부문의 ‘노사관계’ 항목에서 61개국 중 61위를 기록했다. ‘금융전문가 활용의 용이성’도 꼴찌이고, ‘중소기업의 효율성’도 최하위권이다. 이들 항목에서 한국이 동유럽이나 중남미 국가들보다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설문조사에 기초한 이들 응답항목들은 객관적 자료들로 구성된 해당 부문의 다른 항목들과도 충돌한다. 금융서비스 등 20개 항목으로 구성된 금융 부문의 순위는 37위였다. 금융서비스는 세계 최하위인데, 금융의 경쟁력은 중간 정도라는 건 말이 안 된다. 이러한 순위는 한국의 기업가가 다른 나라의 경쟁자들에 비해 엄살이 더 심하거나 더 비관적이라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국제경영개발원의 경쟁력 순위가 널뛰기하는 것도 주관적인 설문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26위였던 한국의 노동시장은 올해 43위로 추락했다. 노동시장 부문에서 경쟁우위를 가졌다던 나라가 불과 1년 사이에 노동시장 때문에 경쟁력을 상실한 나라로 바뀐 것이다. 단기간 내에 노동자들의 작업능력과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크게 악화된 게 아니라면, 이는 국가경쟁력의 순위를 매기는 방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경영개발원의 보고서에서 주목해야 할 우리 경제의 진짜 약점은 객관적 지표에 근거한 항목들에서 찾아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여성과 외국인 그리고 약자에 대한 사회적·경제적 차별의 부분이다.
국민경제를 일등부터 꼴찌까지 순서를 매긴다는 것은 기계적이고 유치한 발상이다. 그럼에도 국가경쟁력 순위로부터 의미있는 교훈을 이끌어내고 싶다면, 기업과 국민경제를 동일시하는 국제경영개발원보다는, 기업의 효율을 중시하되 국민경제를 구성하는 다른 부문들도 시야에 집어넣는 세계경제포럼(WEF)의 발표를 참고할 일이다. 세계경제포럼은 특히 핀란드·스웨덴·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에 각별한 관심을 보인다. 이들 나라는 복지와 사회통합을 중시해 그 재원을 높은 세금으로 충당하면서도 안정적인 거시경제환경과 유연한 시장경제를 통해 최고 수준의 기업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국가경쟁력은 튼튼한 사회안전망과 양질의 공공서비스, 사회구성원들의 타협과 합의를 이끌어낼 신뢰받는 정부, 노동자의 창의와 참여에 기초한 높은 생산성, 사회적 책임을 다함으로써 존경받는 기업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충족되었을 때 비로소 확보될 수 있다는 것이 세계경제포럼의 충고다.(세계경제포럼 2005년 9월25일치 보도자료)
박종현/진주산업대 산업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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