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5.28 18:28
수정 : 2006.06.09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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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살림가족살림
한 마을에 적당한 크기의 목초지가 있었다. 그 마을에는 10가구가 오순도순 살고 있었는데, 각각 한 마리의 소를 키우고 있었고 그 목초지는 소 열 마리가 풀을 뜯는 데 적당한 크기였다. 소들은 좋은 젖을 주민들에게 공급하면서 튼튼하게 자랄 수 있었다. 한 집에서 욕심을 부려 소를 한 마리 더 키우게 되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다른 집들도 소 한 마리, 또 한 마리 등 욕심을 부리기 시작하면서 목초지는 풀뿌리까지 뽑히게 되고 결국 소가 한 마리도 살아갈 수 없는 황폐한 공간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것이 ‘공유재의 비극’(The tragedy of commons)이다.
사회에는 ‘나’의 것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것이기도 한 것들이 많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주민 편의시설 등 공공의 공간과 동네의 작은 공원 자투리 공간도 이에 해당한다. 넓게 보면 환경·자원·에너지·교육·주택 등 현재 우리 사회의 갈등을 유발하는 영역들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이 이야기는 개인의 이익과 공동의 이익을 잘 조화하지 않으면 모두가 비극을 겪을 수 있다는 교훈이기도 하지만, 개인과 공동의 이익을 조화롭게 가꾸어 가는 일이 매우 어렵다는 점을 시민사회에 알려주는 경고라고도 할 수 있다.
상품화, 시장화의 흐름 속에 ‘공유재’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가꾸고 이익을 공유해야 할 공간, 영역은 축소되어 가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대표적으로 위협받고 있는 공유재는 바로 주택이다. 주택 보급률이 100%가 넘으므로 좁은 목초지를 놓고 싸우는 소들처럼 할 이유가 없지만, 한 사람이 소를 두 마리 키우듯 2~3채의 주택을 갖게 되고 투기화하면서 과부족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내집 마련이나 집을 조금 넓히기 위해 주택을 구입해야 하는 사람들 처지에서 몇 억짜리 아파트 한 채 계약하기란 보통 마음 먹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도 비싼 것 같은데 은행 융자 얻어 구입해야 하는 처지에서 혹시 아파트를 산 뒤 값이 떨어지지 않을까, 이자 갚느라 고생하지 않을까 주저하고 망설이는 게 시민들의 모습이다. 그렇게 한두 달 미루는 사이 아파트 가격이 몇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2억원씩 오른다. 평범한 시민들이 아파트를 사는 과정에서 신중히 하느라 고민한 값치고는 너무 가혹하다. 마침내 아파트를 사려고 하면 한두 달 전에 미리 과감히 사지 못한 벌금으로 몇천만원, 몇억원을 내야 하는 것이 오늘의 주택시장이다. 실수요 이외에 끼어 있는 투자·투기 수요로 인한 부담을 실수요자가 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분양조차 되지 않는 아파트도 많고 주택시장의 양극화를 간과할 수 없지만, 이른바 ‘버블 세븐’, 혹은 강남 지역의 아파트 가격 동향은 부동산 정책 성패의 지표가 된다. 60~80%가 꺼진 일본 부동산 거품 붕괴의 시작은 금리 인상이었다. 현 정부도 특정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지금보다 대폭 하향조정되지 않는다면 결국 지금까지 힘을 쏟아부은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기 때문에, 금리정책에 손을 내밀 가능성이 많다. 금리 인상에까지 이른 경로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낳은 과정이었다.
집값 거품이 꺼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여러 채 집 가진 사람들이 집을 내놓을 수 있는 정책도 필요하지만, 노후 대비나 투자의 대안 마련 등 주택이 투기의 과녁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부동산 거품의 비극을 막는 길이다. 개인과 사회 공동체를 지켜내는 사회 구성원들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
신종원 서울YMCA 시민사회개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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