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6.11 17:58 수정 : 2006.06.11 21:02

이일영 한신대 교수ㆍ경제학

나라살림가족살림

참여정부의 패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정권 핵심부에서는 자기 확신이 강해서 더 열심히 정책으로 역사의 평가를 받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앞길은 더 어둡다. 참여정부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경제정책들은 성과는 불투명한 대신, 크고 작은 부작용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현 정부는 부문별로 국가 균형발전 계획을 세우고 지역개발 사업과 지역혁신 사업을 실시하도록 지원했다. 기본적으로는 성장과 개발을 위한 사업이지만, ‘균형’을 위해 전국적으로 자금이 뿌려졌다. ‘혁신’을 빙자한 ‘눈먼 돈’이 지방에 넘친다는 풍문을 접하면서, 사업을 평가하는 시기가 되면 ‘부실’을 추적하는 언론과 수사기관의 발길이 잦아질 것을 예감한다.

행정중심도시 건설도 결국 다시 책임공방에 휘말릴 것이다. 수도권으로의 일극집중 문제는 정예의 지역경제 거점 발전으로 대응하는 것이 정공법이다. 애초에 인천, 부산, 광양 등 물류도시를 잘 발전시키는 것으로 힘을 집중했으면 좋았다. 중세 유럽의 중심지였던 정치도시 파리보다는 경제 기능으로 무장하고 변방에서 근대를 주도한 런던을 꿈꾸는 것이 당연하다. 수도권과 충청권이 분열하고 전문가들까지 다툼에 동원되었는데, 추진세력이 정략의 혐의를 피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들 사업은 땅값 상승을 가져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5년 전국 땅값이 5.0%나 올랐는데, 이는 과거 10년간 연평균 상승률 1.4%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이 때문에 참여정부는 전국 161개 시·군·구를 투기지역으로 지정하고 관련 부동산정책을 30여 차례나 발표했다. 땅값 상승을 방치할 수는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토지 유동성과 경제 효율성을 제한해야 한다. 값을 올리고 거래는 다시 묶고 있다.

아파트 값과의 싸움도 목표를 잘못 세운 정책이다. 강남 집값과 싸우느라, 정작 주거비 상승이 도시 서민 가계에 미치는 파괴적 영향에는 상대적으로 무심했다. 한국의 아파트는 주택이면서 또한 증권이다. 아파트 가격은 세세하게 분단된 지역시장의 수급은 물론 금리나 자금량, 교육, 환경, 교통 등 여러 가지 요소와도 관련이 있다. 상대가격을 정책으로 조정한다는 것은 무리한 목표다. 금리를 올려 브레이크를 걸 수 있으나, 경기 하강, 평균적인 집값 하락의 부담은 피하려 한 것 같다. 과표 정비와 보유세 인상은 성과이나, ‘세금 한번 내보라’, ‘언제까지 웃나 보자’는 식의 태도 때문에, 정부 행위의 정당성은 크게 훼손되었다.

거시경제 관리에 대한 관심도 낮은 편이었다. 내수 침체로 고통받는 서민경제의 실상을 뒤늦게야 알아차렸으며, 실효성 있는 대책도 내놓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증세 논쟁을 다시 제기하면, 정부는 모든 계층의 조직적인 저항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밀어붙이면 집권세력의 지지기반은 더욱 이완될 것이다.

청와대는 일관성과 유연성을 결여한 정책들을 기획했고, 정부는 이를 확대재생산했으며, 여당은 맹목적으로 추수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많은 여당 관계자들은 유력한 대선후보 없는 선거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러나 더 막막한 것은 스스로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국민들에게 신뢰를 잃고 증오를 유발한 정책들에 꽁꽁 묶여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정책들은 상당 기간 여당은 물론 진보·개혁 세력 전체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부분적 수정, 즉흥적 대응으로 될 일이 아니다. 이제 참여정부의 덫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정책적 정체성을 창출하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고 있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경제학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삶과 경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