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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18 17:56 수정 : 2006.06.18 18:05

신종원 서울YMCA 시민사회개발부장

나라살림가족살림

이자제한법이 있던 시절의 이야기다. 서민들이 급할 때 이용하던 사채의 고리 횡포는 그때도 없지 않았다. 당시 사채업자들은 돈을 빌려주면서 채무자의 집 등 부동산에 가등기 설정을 했는데, 이런 수법이 많은 문제를 낳았다.

당시 가등기권자는 채무자가 변제기일에 돈을 갚지 못하면 바로 본등기를 하여 소유권을 차지할 수 있었다. 심지어 채무자가 돈을 갚으려 해도 숨거나 고의로 만나주지 않아 결과적으로 채무불이행이 되게 하고 다음날 바로 소유권 이전 절차에 착수하는 범죄적 사건도 많았다. 변제기일 마지막 날 빚을 갚으려는 여성 채무자를 유인해 성폭행하고 집까지 빼앗은 사건을 계기로, 다수의 악덕 사채업자들이 구속되기도 했다. 이즈음, 채권자가 가등기를 설정한 채무자의 부동산을 차지하려면 채무의 차액을 청산금으로 물어야만 본등기를 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었다. 이것이 1983년 제정된 ‘가등기 담보 등에 관한 법률’이다. 물론 이 법 제정 이후 가등기에 의한 재산 약탈 행위는 자취를 감추었다.

서민의 은행 이용이 수월하지 않던 시절, 사채는 많은 사람들에게 거의 유일한 금융수단이었다. 연 25%를 상한으로 하는 이자제한법이 있던 시절에도 악덕 사채 사례들이 적지 않았다. 가등기 수법이 사라진 이후, 근저당권 설정에 공정증서까지 작성하여 재판 없이도 채무자의 재산에 대한 경매신청권을 확보하여 협박하는 수법, 지금도 여전한 수수료나 선이자 명목의 징수 등 이중 삼중의 사슬을 만들어 궁지로 몰아넣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당시의 어려운 상황들을 돌이켜보아도, 지금 서민들이 겪고 있는 고리대금에 의한 피해 상황에 비하면 한결 나았다. 이자제한법은 1962년에 제정되어 98년 외환위기 때 폐지되기까지 연 25%를 넘는 이자 약정은 무효로 하여 서민들의 울타리가 돼 주었다. 물론 이를 초과하여 과다한 이자를 물게 되는 사례도 있었지만, 정말 어려운 상황에 몰려 압박을 받던 채무자, 이미 25%를 훨씬 초과한 이자를 부담한 채무자들에게 이자제한법은 피난처 구실을 해주었다. 이미 초과 부담한 이자를 찾아올 수는 없지만 더는 물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안전망이었던 것이다.

이자제한법 폐지 이후 8년간 사채 시장은 서민경제의 약탈 현장이 되었다. 등록 대부업체의 평균 금리가 연 164%, 미등록 대부업체의 평균 금리 282% 등 평균 200%가 넘는 금리는 그 자체로 서민 채무자들을 신용불량자로, 또 사회적 회생이 불가능한 지경으로 빠뜨리는 흉기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기된 이자제한법의 부활 움직임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법이 다시 제정되면 부작용이 심해져 음성적 사채시장이 만연할 것이라는 주장을 정부 일각을 포함해 반대론자들이 제기하고 있다. 시중 금리 5% 안팎의 상황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대해 한쪽 눈으로만 보거나, 부당한 고리대금의 횡포로 인해 서민들의 삶이 피폐해질 경우 사회공동체가 이를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가져야 한다는 점에 대해 견해를 달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자제한법의 부활로 부당한 고리채나 사금융에 의한 서민들의 피해를 모두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공공연히 서민경제에 대한 약탈적 행위들이 무제한의 이자율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견제하고 곤궁한 처지의 서민들이 기댈 수 있는 최소한의 피난처를 만드는 것, 곧 이자제한법의 부활은 건강한 사회공동체가 선택해야 할 과제이다.

신종원 서울YMCA 시민사회개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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