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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21 20:52 수정 : 2006.06.21 20:52

전창환 한신대 교수·국제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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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최대의 경제현안은 무엇보다도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 협상과정과 그 결과라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근심어린 눈초리로 협정 협상과정을 지켜보고 있지만, 우리의 관심과 시선이 여기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국민 대다수의 관심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쏠려 있는 틈을 이용하여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금융화 프로젝트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판 금융 빅뱅’을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동시에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자본시장통합법’ 제정을 통해 밀어붙이고 있는 한국판 금융 빅뱅이란 국내의 취약한 자본시장 기반을 대폭 확충하고 대형 투자은행(증권회사)을 육성하여 한국을 자산 운용업 중심의 아시아 금융허브로 자리잡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기존의 금융기관별 규제체제를 폐지하고 금융기능 내지 업무별로 금융규제를 통폐합함으로써 동일한 금융업무(기능)에 대해서는 동일한 규제를 할 계획이다. 또한 정부는 기존의 잡다한 자본시장 관련 업무를 6개의 핵심 금융투자업무(매매업, 중개업, 자산운용업, 투자자문업, 투자일임업, 자산보관관리업)로 재정의하고 이를 수행하는 금융기관에 금융투자회사 자격을 부여할 예정이다. 이제 이 금융투자회사는 6개의 금융투자 업무를 겸영하게 된다. 이로써 기존에 업역별 칸막이를 통해 각자 고유 업무를 수행해 왔던 증권사, 자산운용사, 선물회사 중심의 자본시장 체제는 완전히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

신자유주의적 금융화를 주도한 미국에서조차 대형 투자은행 중심의 금융 자본주의가 부활하기까지에는 60여년 이상의 오랜 기간이 걸렸는데, 어떻게 정부가 단기간에 이를 달성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일본도 1996년 하시모토 정권이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시스템으로 나아가기 위해 금융 빅뱅을 단행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은행(우체국)의 예적금을 선호하는 일본 가계의 자산보유 성향을 바꾸지 못함으로써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시스템을 정착시키는 데 실패했다. 투자자 보호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극히 취약하고 기업경영의 투명성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미흡한 한국에서 금융 빅뱅 구상이 예정대로 5~10년 이내에 제도화할 수 있을지 극히 의심스럽다.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는 금융 빅뱅이 부를 여러 경제·사회적 부작용이다. 예금을 취급하지 않는 금융투자회사에 지급결제업무를 부여할 때 생기는 지급결제시스템의 불안정성 이외에도, 여섯 가지 업무를 겸영함으로써 발생하는 이해상충의 문제도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까다로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대한 것은 자산운용업의 광범위한 확산을 계기로 금융 수익성의 극대화가 개인 투자가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이나 기업연금 등 각종 연기금에 압도적인 규준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 결과 자산적 개인주의가 사회 전역으로 확산할 뿐만 아니라 기업별 노조체제 아래에서 연금 수익성 경쟁의 격화로 노동자들 사이의 연대가 더 약화할 수 있다. 이 밖에 기업 경영자도 주주가치 극대화 요구에 압도되어 점점 기업의 장기적인 내재가치와 성장 잠재력의 확대·강화를 등한시하게 될 것이다.

끝으로 구조조정이나 인수합병 등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정부의 금융관료-금융투자회사의 경영자-회계법인, 심지어 외국계 금융기관 간의 유착의 소지가 더 커져 제2의 론스타 사태, 제2의 엔론 사태 등이 발생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전창환 한신대 교수·국제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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