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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12 21:08 수정 : 2006.07.12 21:08

류동민 충남대 교수·경제학

나라살림가족살림

영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는 자신의 저서 〈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에서 자유무역이 교역 당사국에 두루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간단한 수치를 통해 논증하였다. 그런데, 얄궂게도 그가 든 사례는 영국과 포르투갈이 포도주와 의류를 교환하는 것이었고, 이미 ‘세계의 공장’이자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성장하고 있던 영국에 비해 포르투갈이 두 산업에서 두루 (축구실력이 아니다!) 노동 생산성이 더 높은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다소 과장해서 말하자면, 미국과 멕시코가 자유무역을 하면 두 나라 다 이익이 된다는 예를 들면서, 반도체도 자동차도 멕시코가 미국보다 잘 만든다고 가정한 셈이다. 해서 이 예에는 당시 최강 대국인 영국의 이익을 관철시키려는 리카도의 제국주의적인 음모가 숨어 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주장을 진지하게 하는 경제학자들도 있었다. 사실 자유무역의 이익을 설파하는 이론에서 흔히 간과되는 것은 국가는 단일한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국익이나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추상적인 선언만으로는 이익을 실질적으로 보여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나저나, 리카도의 예는 20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꿋꿋한 생명력을 가지고 한국의 고등학교 교과서에까지 등장하고 있다. 포르투갈은 포도주를, 영국은 의류를 수출하는 것이 서로 이득이 된다는 결과를 밑줄쳐 가며 외어 입학시험을 치르고 대학에 들어갔을 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중심부에 있는 나라와 주변부에 있는 나라가 교역을 하면 주변부로부터 잉여가 중심부로 누출되는 구조가 정착하면서, 주변부는 끊임없이 착취당할 수밖에 없다는 종속이론이라는 새로운, 그러나 알고 보면 남미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유행하였던 주장이었다. 얼마 안 있어 정치인으로 변신할 어느 대학교수가 편집·번역한 종속이론에 관한 책은 20여년 전 대학생들의 필독서 중의 하나였다.

그 당시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사상 최초로 4강에 오른 한국 팀의 활약에 환호작약하다가도, 실상은 축구 4강이 아니라 외채 4강이라고 비아냥거리기라도 해야 최소한 덜 미안하던 시절이었다. 젊은 학생들이 종속이론에 ‘의식화’되는 것을 막고자 만들어진 국민윤리 강의시간에 들어온 정치학 교수는 갑자기 “남미 녀석들이 못사는 건 게으르기 때문이지 종속 탓이 아니야”라고 일갈하였지만, 우리는 야유 섞인 비웃음으로 응수했다.

다른 외채 4강들이 차례차례 채무지불 정지선언으로 쓰러져 갈 때, 1980년대 말 이른바 ‘3저 호황’을 맞이하면서 기적적으로 살아났던 한국 경제는 십여년 뒤 다소 맥락은 다르지만 비슷한 위기를 겪게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게 되었다고 한편에서 샴페인을 터뜨릴 때도 다른 한편에서는 멕시코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곤 했다.

다시 십여년이 흘러 멕시코, 자유무역, 그리고 ‘낡아 빠진’ 종속이론에 이르기까지 익숙한 레퍼토리들이 우리 주위를 떠다니고 있다. 자유무역협정으로 좋아졌다던 멕시코 경제가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원래부터 종속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지다가 낡은 종속이론의 관점으로 사물을 보면 안 된다는 주장으로도 이어진다. 아직도 문제는 홍보나 이데올로기 조작에 있다는 관점으로는 한발짝도 나갈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또 십여년 뒤 우리는 만만한 남미를 들먹이며 논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류동민 충남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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