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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30 18:42 수정 : 2006.07.30 21:30

신종원 서울YMCA 시민사회개발부장

나라살림가족살림

피라미드 금융사기 사건으로 내전을 겪은 나라가 있다. 그리스와 인접한 인구 350만의 소국 알바니아는 국민들에게 단기간에 고금리를 보장한다는 피라미드 방식의 투자 예금 정책을 추진하였는데, 관련 금융업체들이 연쇄도산하면서 국민 대다수가 피해를 당했던 것이다. 1997년 초 시작된 항의시위는 정치권이 금융사들로부터 거액의 정치자금을 수수한 것이 드러나면서 격화하여, 시위대의 해군 함정 탈취와 해군 기지 장악, 정부군의 공군기 폭격과 시위대의 대공 사격 등 심각한 내전 상황으로 비화하였다. 결국 조기 총선을 통해 집권당이 교체되는 것으로 이 피라미드 내전은 일단락되었다.

한 달 남짓 도피 행각을 벌이던 국내 최대 다단계 판매업체의 회장이 마침내 검거되었다. 중장년층을 상대로 원금의 250%에 이르는 고소득 보장, 유전 개발을 통한 수백조원 수익 확보 공언, 영화와 출판업 등 사업 확장, 전직 고위공직자와 유명인사 임원 보유 등으로 유명했던 거대 다단계 판매업체의 신화가 사실상 사기 행각으로 막을 내리고 있다. 이 업체는 돈을 모으는 수법이나 규모 등에서 과거 다단계 판매업체의 그것과는 달랐다. 전체 피해 규모 5조원에 피해자 35만명이라는 주장이 과장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종전 사건들에 비해 규모가 훨씬 크고 수법 또한 치밀하여 많은 사람들이 큰돈을 믿고 맡겼다.

종래 피해자들 대다수가 대학생 등 젊은 층이었고 피해 금액도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의 규모였던 데 비해, 이 업체는 피해자 대다수가 나름대로 인생의 경험이 있는 중장년층이고 피해 금액도 한 사람에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르렀다. 투자 유인 방식도 확연히 달랐다. 투자금의 250%를 수익으로 보장한다고 했고, 1억원을 투자한 사람은 자신의 통장에 수십만원씩의 수익금이 매일 찍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돈 빨리 쉽게 버는 신기루는 점점 자라, 많은 피해자들이 나머지 재산과 매일 발생한 수입을 다시 투자금으로 집어넣는 일이 허다하였다.

사건의 핵심에는 돈을 쉽고 빨리 벌 수 있다고 현혹하는 극단적 사행성이 있고, 투자금의 몇 배를 돌려준다고 공언하는 사업자와 이 신기루를 실현 가능한 현실인 양 믿고 달려가는 투자자들이 얽혀 있다. 몇 해 전 정부가, 다단계 판매 법정 수당비율 35%를 초과하여 사행성이 지나칠 경우 처벌받게 되어 있던 조항을 삭제한 것이 이 사기 행각을 만드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하였다. 또 피해 사례들이 다수 드러났고 시민단체의 문제제기와 예방을 위한 행정 조처 요청이 있었는데도 시장의 문제라며 방치하다가 결과적으로 사건을 키우게 되었다. 또 정치인과 연예인 등 대중적 지명도가 있는 인사들이 여럿 관련되어 이 업체가 사업을 확장하는 사회적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실제 이 업체는 유명인들에게 사업이 어려워진 상황에서도 오랜 기간 수당을 빠짐없이 넣어주는 등 철저히 관리해 왔고, 이들을 이 사업의 사기성을 은폐하는 데 활용해 왔다.

우리 사회도 내전은 아니더라도, 돈 쉽고 빨리 버는 피라미드의 신기루를 좇는 바람에 가족간, 친구간, 동료간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입고 쉽게 헤어날 수 없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신기루로 건강한 희망을 대신할 수는 없다. 상식을 가진 시민들이 빠질 수 있는 함정, 사업자들이 사기성 신기루를 만들 유혹의 함정이 있다면 메우고 가야 한다. 시민들에게 다가오는 사기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정책으로, 또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응답할 때다.

신종원 서울 YMCA 시민사회개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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