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8.09 19:48
수정 : 2006.08.09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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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환 한신대 교수·국제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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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살림가족살림
현정부가 한국 경제를 홍콩·싱가포르와 어깨를 나란히할 수 있는 동북아 금융중심으로 육성하고자 대대적인 금융개혁을 추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1990년대 후반부터 도쿄를 뉴욕·런던에 맞설 국제 금융센터로 발전시키기 위해 금융 빅뱅을 단행한 적이 있다.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현재 일본은 우여곡절 끝에 일본의 최대 금융기관이기도 한 우체국을 2017년까지 민영화하기로 결정하고 이미 세부적인 틀을 마련한 바 있다.
일본은 다른 선진국들보다 저축률이 높기로 유명하다. 실제 일본 개인들의 금융자산을 다 합친 금액이 무려 1400조엔에 이른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금융자산이 미국처럼 주식이나 채권이 아니라 우체국 예금을 포함하여 은행의 예·적금 형태로 보유되고 있다. 결정적인 문제는 50~60년대 일본 경제의 고도성장에 크게 기여했던 일본 개인들의 이런 자산 보유 성향이 2000년대 이후에는 일본 경제에 커다란 부담과 굴레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80년대부터 일본 기업들의 은행차입 수요가 꾸준히 줄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잃어버린 10년’ 동안 이런 경향이 더 강화되었다. 앞으로도 당분간 이런 추세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문제는 기업들의 차입수요가 현저히 줄어든 상태에서 가계의 여유자금이 은행으로 집중됨에 따라 은행이 대출시장에서 격렬한 경쟁에 노출된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은행들이 위험에 상응하는 대출이자율을 부과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리스크가 은행에 과도하게 집중되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는 금융 빅뱅을 통해 우체국과 은행의 예·적금에 편중되어 있는 가계의 여유자금을 자본시장의 다양한 새로운 금융상품으로 분산하고자 했다. 하지만 금융 빅뱅을 통한 자본시장의 활성화와 가계의 주식·채권 보유비율의 확대는 완전히 실패했다. 제로금리에 가까웠던 2004년 말 기준으로 우체국 예금을 포함하여 일본 가계의 현금 및 예·적금 보유비율이 50%를 넘었는데, 주식 및 채권 보유비율은 각각 8%, 3%에 불과했다. 같은 시점 미국의 경우, 가계의 주식과 채권 보유비율이 각각 33%, 9%, 현금 및 예·적금 비율이 13%였다는 점은 일본과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이런 상황을 타파하고자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마지막으로 꺼낸 카드가 바로 우체국 민영화였다. 실제 고이즈미 총리는 우체국 민영화에 대한 국민의 확고한 지지보다는 초기 민영화법안 통과를 좌절시켰던 중의원의 해산 등 자민당내 반대파들을 주변화하는 선거전술을 통해 결국 우체국 민영화법안을 통과시켰다. 과연 민영화법대로 고이즈미 총리 퇴임 이후 2017년까지 우체국 민영화가 순탄하게 진행되어 일본 자본시장의 활성화와 주식투자 문화의 광범위한 확산을 가져올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우선 우체국 민영화에 강력히 저항하고 있는 우체국내 특정 집단들이 자민당내 보수파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데, 이는 앞으로 10년 동안 우체국 민영화를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할 고이즈미 이후 차기 정부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우체국 민영화가 자본시장의 활성화와 주식투자 문화의 확산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요컨대 투자자 보호와 관련된 모든 제도와 법들이 확실하게 정비되고 그것이 오랜 시행과정을 거쳐 투자대중들에게 명실상부한 투자자 보호조처로 각인되지 않는 한, 미국식 주식투자 문화의 광범위한 확산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전창환 한신대 교수·국제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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