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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24 18:05 수정 : 2006.09.25 18:06

이일영 한신대 교수ㆍ경제학

나라살림가족살림

출근길에 잠깐 들길을 걷노라면 알곡 익는 소리가, 그리고 절망의 탄식과 분노의 아우성이 들린다. 앞으로도 얼마나 초록과 황금 벌판을 만날 수 있을까. 수도권과 도시가 자원을 빨아들이면서, 지방과 농촌은 점점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다.

지방과 농촌이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면, 선진국으로의 길은 없다. 그런데 시간과 자원이 별로 없다. 그래서 ‘특구’가 필요하다. 힘을 모아 희망의 공간을 여는 기적의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한다. 말뿐의 성찬이 아닌 개혁의 성과와 성공을 보여야 한다. 전국을 ‘균형’ 발전하도록 ‘빅 푸시’한다는 것은 공허한 계획일 뿐이다.

우리보다 훨씬 앞선 유럽도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낙후·농촌지역의 개발·구조조정에 집중하는 쪽으로 유럽구조기금을 개혁했다. 또 유럽에서는 인구 10만 이하의 농촌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참여적 지역개발을 확대하고 있다(LEADER 프로그램). 그러나 한국은 아직 자치의 경험이 부족하고 농업과 지역 산업의 발전 수준이 낮다. 소규모 지역단위에서는 발전 주체를 찾기 어렵다. 따라서 도와 시·군들이 확대된 지역연합을 결성하여 중앙과 국외의 인력과 자본을 결합해야 한다.

마침 천혜의 공간이 있다. 국토의 서남지역은 그간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되어 전국에서 1인당 민간 지출이 가장 낮은 농어촌 지역이다. 대신 청정하고 수려한 자연환경이 있고 동북아-황해 경제공동체의 허브가 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가졌다. 서남지역이 국제적 경쟁력을 가진 지역으로 살아나면, 지방과 농촌의 새로운 발전모델을 보여줄 수 있다.

이제 지방과 농촌의 운명은 수도권 도시를 뛰어넘는 새로운 매력을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서남지역이 성공하려면 새로운 상상력으로 동북아와 세계로 연결되는 모델을 창안해야 한다. 행정도시나 기업·산업도시를 복제하는 방식으로 수도권과 경쟁해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새만금 간척사업, 광주 사이언스파크, 대불공단, 전남도청 이전사업 등과 같은 고식적인 투자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이에 비하면 서남해안포럼의 에스(S)프로젝트나 김석철 명지대 교수의 진도오아시스플랜은 몇 걸음 진전된 구상이다. 에스프로젝트는 무안공항을 중심으로 국제항공물류단지를 조성하고 자연·생태 환경을 활용한 장기체류형 고급 휴양도시를 개발하자는 것이다. 진도오아시스플랜은 서남해안에 오아시스 같은 해안도시를 건설하여 다도해와 제주도를 있는 국제적 휴양권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성패는 기존 관광단지 개발 프로젝트와는 다른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는 데 있다. 서남의 도시들이 진정 ‘변압기이고 전환점이며 단절이고 세계의 운명’이 되기 위해서는 농업·농촌과 상생하고 통합되어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지역공간은 제1지역(농업-서비스업), 제2지역(제조업-서비스업), 제3지역(도심기능-서비스업)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서남지역에서는 환경에 부담이 큰 축산업 비중을 줄이고 농수산물의 청정도를 더 높여야 한다. 동북아로의 물류의 출구를 만들고 가공·유통기업을 끌어들여야 한다. 농업에 민간자금과 인력이 들어와야 하는데, 이를 위해 기존 농촌공사나 농협의 독점체제를 경쟁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가족농 체제를 전제하고 있는 농지제도도 기업 형태를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 의료클러스터, 관광휴양권의 배후지역에는 가정간호 서비스 시스템을 촘촘히 깔아서 서남 농촌지역을 복지국가 전략의 전진기지로 삼는다.

농촌이 없으면 도시가 없고, 지방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 농촌과 지방이 떠오르는 기적의 공간, ‘서남특구’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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