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9.27 18:37 수정 : 2006.09.27 18:37

김용창 세종대 부동산경영학과 교수

나라살림가족살림

며칠 전 한나라당 대변인은 타이에서 일어난 쿠데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나라에서 군부 쿠데타를 선동하는 듯이 논평을 해서 물의를 일으켰다. 대변인의 직위에 오른 것을 보면 말에 대해서 생무지한 사람은 아닐 터이기에 혹시 당의 뿌리를 생각하며 오랜만에 쿠데타의 추억에 몸서리치도록 희열을 느꼈던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정치적으로 점잖게 표현하여 쿠데타는 같은 체제 내에서 지배자를 교체할 목적으로 무력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며, 한 계급에서 다른 계급으로의 권력이동이 아니고, 일반 대중의 지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혁명과 다르다. 특히 군부 쿠데타의 과정은 아르헨티나의 비델라 공포정치에서 보듯이 많은 경우 자국민을 살해하는 ‘더러운 전쟁’을 동반하는 것이며, 우리의 경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쿠데타로 집권한 세력이 부동산 정책에서 강경한 제도를 많이 도입하였다. 처음으로 자본이득 과세를 한 1967년의 부동산 투기 억제에 관한 특별조치법, 1978년 국토이용관리법 개정을 통한 개발이익 환수·조정 근거 마련, 1989년 토지 초과이득세법, 개발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 택지소유 상한에 관한 법률 등이 그것이다.

예전에는 공공사업 때문에 주변지역 토지 소유자들이 이익을 보면 필요한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부담케 하여 토지보유 상태에서 개발이익을 환수하였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도로법이나 도시계획법에 도로의 신설로 주변지역 토지가격이 상승하면 도로 폭의 3배 구역 내 토지 소유자에게 수익자 부담금을 물리는 규정을 두었고, 도로 포장이나 확장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정론직필을 필살의 무기로 앞세우는 언론도 찬양을 보냈던 이러한 제도들이 추억 속으로 사라졌고, 이제는 그 비슷한 말만 꺼내도 벌떼같이 들고 일어난다. 상황이 바뀌어 총부리 앞의 정론직필이 이제는 자본의 부라림에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정부가 만들어 준 땅에서 집을 지으면서 선분양제의 이점은 그대로 챙기며, 분양값 자율화의 선물을 받아 주택건설 자본은 막대한 이익을 보고, 국민은 끝없이 치솟는 분양값의 혹독함을 맛본다. 아마도 세상에 이보다 더 좋게 시장논리를 보호해 준 역사가 없을 정도이지만 분양가격은 1년 만에 갑절로 치솟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쿠데타의 추억을 찾으려면 총부리의 쿠데타가 아니라 상황이 바뀌었으니 자본에 대한 부동산 쿠데타에서 찾으면 어떨까? 내 집을 장만하고자 하는 욕구를 사용개념 중심의 임대주택 문화로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다는 현실을 고려하면 주택 보급이 충분할 때까지 기본적으로 1가구 1주택주의 원칙을 확립하는 것이다. 늘 초과수요가 있고 부동산값이 오르는 특정 지역에서는 소유권을 제한하는 소유 제한 지역제 도입, 공공이 강제로 수용하여 만든 땅에서 짓는 주택에는 집이 없는 사람만 입주할 수 있게 하는 제도 도입, 주택 분양가격의 공개와 더불어 분양가격을 실질적으로 낮출 수 있는 제도의 도입이 아마도 그런 발상에 가까울 것이다. 생애 자본이득 총량제 도입, 나아가 토지 소유권에서 개발권을 분리하여 공적으로 관리하는 방안도 마찬가지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역사는 생사를 건 자유를 위한 투쟁이고, 그러기에 역사가 물려준 질서는 나은 생존을 위한 근거다. 거미도 줄을 쳐야 벌레를 잡는다. 더러운 전쟁의 추억을 꿈꾸지 말고 부동산의 쿠데타 발상과 착실한 정책준비를 통해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밑바닥의 민심으로 집권하는 것이 도리다.


김용창 세종대 교수·부동산경영학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삶과 경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