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0.18 19:26
수정 : 2006.10.18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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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창 세종대 교수·부동산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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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살림가족살림
세상에서 가장 믿기 어려운 말로는 장사꾼의 밑지는 장사라는 말, 다음에 돈 벌어서 효도하겠다는 자식의 말, 국민에 봉사한다는 정치인의 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운데 으뜸을 다투는 것이 장사꾼의 말인데, 장사의 논리로 분양원가 공개를 비켜갔던 대통령이 얼마 전 이 말을 뒤집으면서 다시금 원가공개를 추진하고 있다. 1999년 분양가 자율화 이후 서울시의 평당 분양가는 1998년 520만원에서 2006년 1392만원으로 턱없이 올랐다. 용산구는 556만원에서 2110만원으로 올랐고, 주상복합 아파트는 평당 4천만원 수준까지 거론되는 지경에 이르러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용케 잠재웠던 원가공개 귀신도 깨어났다. 건설업자들이 자초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간 줄기차게 원가공개를 반대해 왔던 건설교통부는 능청스럽게 변덕을 부려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자본가 윤리에 비춰 떳떳하고 뭔가 켕기는 구석이 없다면 투명사회를 외치는 세상에서 원가공개를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것이 일반 사람들의 아주 평범한 생각일 것이다. 그런데 원가공개는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라 분양방식 및 분양가격 통제와 같은 주택공급 방식 전체와 얽혀 있는 문제다. 주택 분양가격 규제는 1963년 제정한 ‘공영주택법’에 입주금과 임대료를 건설원가와 연계하여 결정하도록 정한 것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후 77년 8월부터 정부가 정한 상한선보다 낮아야 사업계획을 승인하는 방식으로 아파트 분양가격을 통제하였다. 그리고 그 대가로 78년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을 제정하면서 제7조에 주택 건축공정이 전체 공정의 20퍼센트 이상이면 입주자를 모집할 수 있는 선분양제도를 도입하였다. 그러던 것이 99년 분양가 자율화로 분양가격 통제는 풀면서 그 쌍으로 도입했던 선분양제의 특혜는 그대로 누리는 상황으로 변해버렸다.
그렇다 보니 소비자들은 당장 들어가 살지도 못하는 집에다 미리 돈을 갖다 바쳐야 하는 상황이 계속된 것이고, 견본품으로 제시했던 주택과는 다른 집을 인도받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전국아파트연합회가 2649개 단지를 조사했더니 주택건설회사의 가구 바꿔치기가 절반을 넘었고, 한국소비자보호원의 조사에서도 아파트 관련 소비자 피해 유형의 46.9%가 이와 관련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분양가 자율화와 선분양제를 악용하면서 큰 이득을 챙기는 윤리의 상실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원가공개와 관련해 재미있는 것은, 지난 10월8일 국회 과학기술 정보통신위원회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국정감사 자료를 바탕으로 이동통신 3사가 원가보상률 100%를 넘어 최고 22%의 초과이윤을 올리고 있기 때문에 요금 인하를 통해 이용자에게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였다는 사례다. 아파트 분양원가의 공개는 물론, 분양가격 통제와 인하의 논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최근의 상반되는 법원 판결, 소비자기본법, 기업회계 기준, 민간택지에 건설한 민영주택의 포함 문제 등 얽히고설킨 문제를 풀어야 하지만 분양방식 변화 및 가격 인하와 연계할 수 있는 원가공개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말한 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이 시장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목숨을 건 도약’을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주택건설업은 정부가 강제로 수용하여 터를 닦아 제공한 땅에서 집을 짓고, 완성하지도 않은 채 팔 수도 있으면서 판매가격에 대해서는 통제도 하지 않는 ‘식은 죽 먹기’에 너무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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