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1.01 18:27
수정 : 2006.11.01 18:27
나라살림가족살림
한국투자공사가 공식 출범한 지도 벌써 1년3개월이 지났다. 출범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이강원 초대 사장이 불명예 퇴진하는 등 한국투자공사는 출발부터 순탄하지 못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도 출범 당시에 제기했던 문제들이 해결되기는커녕 자산운용과 관련된 내부통제 규정의 미비, 해외투자 능력의 취약성, 주요 인사들에 대한 과도한 보수 및 방만한 지출, 자산위탁운용사 선정계약을 둘러싼 의혹 등 공사의 존립자체를 의심하게 하는 각종 비판과 의혹(심상정 의원 국정감사 질의서)이 나오고 있다.
한국투자공사 설립은, 정부가 2003년 12월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 로드맵에 따라 한국을 자산운용업에 특화한 지역금융센터로 육성하기로 한 정책적 결정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직접적 설립 계기는 2000년 이후 외환보유액의 급증과 2004년 외환보유액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거대한 손실 등이었다. 이 과정에서 재정경제부는 환율관리 정책의 오류에 대해 반성은커녕 오히려 이를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절호의 계기로 삼았다. 결국 재정경제부는 외환보유액의 전문 운용기관 설치를 위해 한국투자공사법안을 제출하고 국회가 이를 통과시킴으로써 2005년 7월1일 한국투자공사가 정식 출범했던 것이다.
한국투자공사는 정부 출자와 한국은행의 부분 출자로 설립된 공사이다. 외국환평형기금이 한국투자공사에 1000억원을 출자했다. 출범 이후 한국투자공사는 운용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은행과 재정경제부(외국환평형기금)로부터 각각 170억달러와 30억달러, 총액 200억달러(약 20조원)를 위탁받았다. 한국투자공사는 중장기적으로 운용자금을 1000억달러 규모로 크게 확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려스럽게도 170조원을 넘는 국민연금 적립금의 일부가 운용자금의 확충 대상으로 들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투자공사 설립의 최대 문제점은 우리나라의 적정 외환보유액이 얼마인지에 대한 엄밀한 검토 없이 일시적으로 크게 늘어난 외환보유액을 근거로 국민의 혈세가 들어가는 항구적인 조직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대만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보다 4∼5배 많은 8000억에서 1조달러의 외환보유액을 보유하고 있는 이웃 일본이나 중국은 한국투자공사와 같은 조직을 설립하지 않고 있다. 싱가포르의 투자청만을 모델로 해서 한국투사공사를 설립했다는 설명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설사 한 발짝 양보해서 한국투자공사의 설립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거버넌스 구조로는 조직을 제대로 운영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자산운용의 기본 방침과 운용 계획을 심의·의결하는 운영위원회 위원들의 임면에 재정경제부의 입김이 절대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투자공사가 독립성과 자율성을 제대로 발휘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또한 견제와 감시 장치가 허술해 한국투자공사 안 주요 수탁자들의 책임을 명확히 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 몇년 동안 한국은행은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에 밀려 권한이 많이 축소된 것에 대해 체념 섞인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직원들의 높은 보수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여 왔다. 차제에 외화자산 운용과 관련하여 한국은행에 더 많은 일거리와 권한을 주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어떨까? 이와 동시에 중장기적으로 환율관리 정책 전반을 재검토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전창환/한신대 교수·국제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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