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1.03 16:50
수정 : 2007.01.0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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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민/충남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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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살림가족살림
오래 전 어느 신문사에서 나온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에 관한 실록을 다시 들춰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짧게 끊어지는 문장과 번갈아 교차되는 증언, 급박한 장면 전환 등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전개 속에서도, 등장하는 ‘영웅’들이 어찌할 수 없이 무릎을 꿇는 상대가 딱 하나 등장하는데, 그 이름은 다름 아닌 ‘시장’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디제이(DJ)와 그 각료들은 온갖 내공을 동원하였으되, 시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따위의 무협지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도대체 시장이란 무엇일까?
사실 모든 사람에게 유리한 경제정책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무차별하게 적용되는 시장의 신묘한 내공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둘러싼 논란은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종부세의 ‘세금폭탄’적 성격을 강조한 주요 언론이나 많은 경제학자들은 부동산값 폭등에 대한 해결책으로 시장논리에 따를 것을 주장한다. 시장논리라야 어찌 보면 별 것도 아닌데, 정부가 자꾸 건드리면 문제가 더욱 악화될 뿐이니 그대로 내버려 두면 시장은 스스로 균형을 찾아 움직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굳이 신자유주의니 뭐니 하는 거창한 개념어를 구사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경쟁은 불가피한 것이라는 인식을 체화한 채 살아가게 된 대다수의 생활인들도 종부세 논란에서는 이미 전 국민의 스포츠 수준조차 넘어버린 대통령 (및 정부) 욕하기에서 벗어나 손쉽게 국세청의 손을 들어준다. 어쩌면 그 논리란 2%도 채 안 되는 부자들에게 내려지는 ‘폭탄’은 훨씬 더 강해도 상관없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미 통계로도 밝혀진 바와 같이 종부세 납부대상자 중의 많은 이들은 주택을 두 채 이상 소유하고 있는 이들이고, 실상 그 주택들은 하룻밤 사이에 몇 억원씩 오른 것도 사실이므로, 그들은 종부세의 폭탄공격에도 불구하고 끄떡없거나 오히려 시세차익으로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음이 있는 이들이다. 오히려 ‘폭탄’ 때문에 가장 큰 고통을 겪을 이들은 흔히 말하는 1가구 1주택자들, 그리고 강남 또는 유사강남에 1주택을 마련하고자 하는 꿈을 버리지 못한 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이들일 것이다. 이들은 아마도 전체 백분율상으로는 꽤 높은 수준에 속해 있지만, 스스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운위할 만큼 상류계층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계층일 가능성이 높다. 사실 모든 이들이 예컨대 교육이나 주거환경 좋은 곳에 집 하나 갖고 싶다는 단일한 욕망을 가지고 움직이는 사회에서, 그러한 욕망의 본질적 구조가 변화하지 않은 상태라면, 단순히 피라미드의 상위계층에 있는 이들을 공격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위계의 맨 꼭대기에서 투기적 이득을 충분히 누리는 이들은 자신들에게 물질적 이익을 가져다준 ‘사회주의적 정책’을 비난하고, 그 바로 밑에서 위로 올라갈 가능성이 막히거나 더 아래로 쫓겨 내려가야 할 처지에 놓인 이들은 스스로의 존재와 의식의 괴리를 감수하면서까지 맨 꼭대기의 이들과 함께 상상 속의 전선에서 한편이 되는 역설이 생겨난다. 그 전선의 반대편에는 이미 애초부터 상승의 가능성조차 없었던 이들의 절망이 자리잡고 있다.
나는 시장의 신공을 그다지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시장이란 영웅의 역사 속에 파묻힌 민중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시장을 통제해보려는, 또는 시장에 최소한의 공평성이나 민주주의적 가치를 부과해보려는 노력은 매우 정교하고도 치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어설픈 시도는 시장의 이름을 빈 분파적 이익의 냉혹한 복수를 잉태할 것이기 때문이다.
류동민/충남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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