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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05 17:31 수정 : 2007.01.05 17:31

유종일/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나라살림가족살림

올해는 그 끔찍했던 외환위기를 맞이한 지 꼭 10년째 되는 해다. 위기 당시 일부 부유층들은 고금리에 환호하며 “이대로 영원히”를 외쳤다는 풍문도 있기는 했지만 대다수 국민들에게 환란은 힘겨운 시련이었다. 기업 연쇄부도와 정리해고라는 날벼락이 떨어지고, 물가는 오르고 실업자는 늘었으며, 심지어 가정 해체와 노숙자 문제까지 겹쳤다. 한국경제는 신속한 위기극복을 자랑했지만, 위기가 남긴 상처들은 아직도 여물지 않아 우리 사회·경제 이곳 저곳을 아프게 후비고 있다. 양극화 심화, 고용 불안정과 비정규직의 비대화 등이 그것이다.

사람은 고난을 겪으면 그만큼 성숙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 경제도 환란의 아픔을 겪으며 성숙해진 부분이 있다.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재무구조가 건전해졌고, 거시경제 면에서도 경상수지 흑자가 누적되어 외환 보유고가 크게 확충되었다. 대우그룹의 몰락에서 보듯 ‘대마불사’ 신화도 무너지고, 시장기능이 강화되었다. 기업 지배구조가 개선되어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 그 뼈아픈 교훈을 벌써 잊은 건 아닌지 걱정스런 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부채에 의존하는 성장을 버리지 못한 점이다. 환란을 계기로 금융위기가 폭발했던 바탕에는 기업들의 과다 부채 문제가 있었다. 만성적 부채경영은 경제성장이 잘 될 때는 문제가 없지만, 성장이 둔화되거나 기업 채산성이 악화되면 기업의 재무적 위기를 초래하고 이는 또 이들 부실기업에 대출을 해준 금융기관의 부실로 전이되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과다부채 문제는 해결하였으나, 엉뚱하게도 가계부채 문제를 키우고 말았다. 김대중 정부는 단기적인 경기 활성화와 성장률 높이기에 급급한 나머지 신용카드 남발을 부추겨 카드채 대란을 낳고 신용불량자를 양산하여 내수 부진과 민생 파탄의 주된 원인을 제공하였으며, 이를 보고도 정신을 못 차린 노무현 정부는 주택 담보대출이 천문학적으로 치솟는 것을 보다가 이제야 대출규제에 나섰다. 부동산 거품이 내려앉아 가계부실을, 이로 말미암은 금융기관 부실화 사태가 벌어지면 우리 경제는 또한번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취약한 경제구조를 개선하는 일에도 소홀했다.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책임성 등에서 개선이 있기는 했지만 순환출자를 통한 총수의 기업지배권 확대나 국민경제의 소수 재벌 의존도 등 구조적인 문제는 외환위기 전보다도 더욱 심화되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 수출기업과 내수기업 사이에 격차는 더 벌어지고 연관관계는 약화되었다. 정부가 여전히 성장 지상주의에 함몰돼 단기적인 경기관리에 몰두하면서 구조개혁은 뒷전으로 미룬 탓이다.

그만큼 고생을 했으면 달라질 법도 한데, 노사관계 또한 나아진 것이 없다. 연초부터 현대자동차의 노동쟁의 소식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기업은 노동자를 가치의 원천으로 존중하고, 노동조합은 생산성과 기업경쟁력 향상을 위해 앞장서는 노사관계는 언제나 뿌리내릴지 한숨이 나온다. 경영자는 투명경영과 인간존중의 경영으로 노동자의 신뢰를 얻으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상당수 대기업 노조들은 기득권화했고, 노동운동이 우리 사회의 민주·선진화의 동력이 되리라는 기대는 멀어졌다. 분배뿐 아니라 생산도 생각하고, 권익뿐 아니라 연대도 추구하는 노동운동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외환위기 10년 후. 한편으로는 양극화가 날로 심화되고 민생고는 깊어가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의 안정성과 경쟁력 면에서도 갈 길이 멀다. 새 출발이 필요하다.

유종일/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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