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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9.26 18:00 수정 : 2007.09.27 14:37

강수돌 고려대 교수·조치원 신안1리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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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온라인 조사에 따르면, 명절 때 여성들이 시어머니로부터 가장 듣기 싫은 말이 “더 있다 가라”라 한다. 이른바 ‘명절 증후군’으로 힘들어하는 경우도 응답자 1,500명의 80% 이상이었는데 가장 큰 까닭이 ‘시댁 식구 등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명절 노동에 대한 스트레스’다.

시어머니로부터 “더 있다 가라”란 말을 들을 때, 대개 여성들은 속으로 ‘집에 가서 편히 쉬고 싶다’거나 ‘친정도 가야 하는데’ 하는 생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 쉽다. 이런 게 결국은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나 일로 인한 스트레스로 나타나 ‘명절 증후군’이 된다. 나 자신도 남성 위주 문화에서 자랐기 때문에 제 아무리 양성 평등 의식을 갖고 평등 문화를 실천하려 노력한다 한들 이 역시 상대적인 것일 뿐, 실상은 언제나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일로 인한 스트레스는 갈수록 양성 평등 의식이나 개방적 문화의 확산으로 조금씩 나아지는 듯하다. 가장 보수적 유교 문화를 대표하는 ‘성균관’조차 “남성도 가사 일을 도와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는 갈수록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순수한 인간관계 자체보다는 다양한 변수들이 관여하는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심리적 갈등 때문이다. 예컨대, 고부간 갈등도 남성 위주의 지배 문화나 세대간 가치관 차이 따위로 매개되기 일쑤다. 경우에 따라선 돈이나 자존심 때문에 사태가 더 복잡하게 되기도 한다.

문제를 기혼 여성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사람으로 넓혀 보면, 사태는 더 심각하다. 예컨대, 아이들은 “공부 잘 하냐?” 또는 “반에서 몇 등 하냐?”라는 물음이, 그리고 대학생들은 “취업은 언제 하나?”라는 말이 가장 짜증날 것이다. 또 나이 든 미혼 여성이나 독신주의자들은 “언제 국수 먹게 되냐?”라는 말이, 아무 ‘계획’ 없는 신혼 여성에겐 “애기 소식 없냐?”란 말이 왕 짜증일 것이다. 남성도 크게 보면 마찬가지다. “언제 장가 가냐?”, “어디에 취직 했냐?”, “승진은 언제 하냐?”, “연봉이 얼마냐?” 등등.

결국, 이 모든 사태를 관통하는 문제는 ‘소시민적 행복’의 추구다. 다시 말해, 공부 잘해 좋은 직장 가서 승진하고 출세하며, 결혼해서 아이 낳고 어른 잘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참된 내면적 욕구의 건강한 충족이 아니라 ‘외부’의 기대와 시선에 초점을 맞추는 삶, 이것이 문제다. 바로 여기서 나는 이 ‘소시민적 행복’ 추구 경향이야말로 역설적이게도 사회의 대다수에게 행복보다 스트레스를 더 많이 주는 주범이라 본다.

영화 <즐거운 인생>을 보면, 주인공들이 이런 소시민적 행복 추구 경향에 눈물겹게 맞서 싸우면서 진정 ‘자기 하고픈 것’을 할 때 깊은 내면의 행복감을 느끼게 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조차 사회구조 변화와 함께 가지 못할 때 인간관계상 갈등이 지속됨을 일러주고 있기도 한다. 예컨대, 처자를 캐나다로 보내고 중고차 사업을 해서 돈만 보내주는 ‘기러기 아빠’ 혁수나 공부 잘 하는 아이를 위해 밤낮으로 직업을 ‘두탕’ 뛰는 성욱, 교사인 아내로부터 ‘제 구실’ 못한다고 구박받는 기영 등, 모두가 소시민적 행복을 위한 ‘돈벌이 기계’ 역할을 어느날 갑자기 거부했을 때, 이혼이나 별거, 의심 따위의 대인관계 갈등을 겪는다.


결국, 일시적 ‘명절 증후군’ 논란을 넘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참 행복을 느끼며 ‘즐거운 인생’을 살려면, 남녀 모두 자신이 진정 하고픈 걸 추구함과 동시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조건들을 만들어가는 노력을 함께 해야 할 것 같다. 예컨대, 취미와 직업의 조화, 직장과 가정의 조화, 교육과 삶의 통일 등을 위한 구체적 조건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제부터라도 소시민적 행복이 아니라 사회적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해나갔으면 한다.

강수돌 고려대 교수·조치원 신안1리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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