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1.14 17:57
수정 : 2007.11.14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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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KDI국제정책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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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살림가족살림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제기된 삼성그룹의 비자금 및 로비, 지배권 승계 작전 등 엄청난 비리의혹이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 차기 검찰총장 후보와 현직 대검 중수부장과 국가청렴위원장 등이 삼성의 뇌물을 받았다는 주장은 가히 메가톤급이다. 검찰 간부들뿐 아니라 경제부처 관리들이나 국세청 간부들에게도 조직적으로 뇌물을 뿌렸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 땅의 공권력이 송두리째 삼성에 놀아났다는 얘기가 된다.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대한민국에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대선보다 백배는 더 중요한 사건이다. 하루빨리 진실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검찰은 스스로 의혹의 대상이 되어 있기에 수사 주체로 적합하지 않다. 특별검사 임명이 필요하다. 사안의 중대성과 삼성의 막강한 영향력을 고려할 때 정말 특별하게 강직한 분을 위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최병모 변호사라면 좋을 것 같다. 삼성그룹은 모든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만큼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해서도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
대선이 코앞에 다가왔는데 여당 후보의 지지도가 10%대를 헤매고 있다.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의 실망 때문이다. 말은 ‘좌파’로 하면서도 행동은 ‘신자유주의’로 하였고, 말로는 개혁과 분배를 얘기하면서 실제로는 재벌과 부동산 부자들 좋은 일만 했기 때문이다. 과거 어느 정권보다 서민의 편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했던 참여정부가 농민시위를 진압하며 죽음을 부르질 않나, 노동자대회를 원천봉쇄하질 않나,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사람들 눈에서 피눈물이 나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참여정부 변심의 원인은 무엇일까? 필자는 작년에 <창작과 비평>에 발표한 글에서 가장 유력한 가설로 ‘삼성공화국론’을 제시한 바 있다. 삼성그룹의 영향력 때문에 경제정책이 성장 위주로 굴절되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정부 출범 직전에 삼성경제연구소로부터 ‘국정과제와 국가운영에 대한 어젠다’란 제목의 방대한 보고서를 받은 것부터 시작해서 국정에 대한 삼성의 영향력은 여러 차례 확인되었다. 또한 금산법 개정안 처리, 삼성 엑스파일 사건의 처리, 생보사 상장 자문위원회의 결론, 공인회계사회의 삼성에버랜드에 대한 면죄부 수여 등 삼성에 유리한 결정들이 줄줄이 내려졌고, 전 금융감독위원장은 본분을 망각하고 금산분리 완화를 소리높이 외쳤는데, 이것도 삼성의 로비와 관련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흔히 말하기를 민주화 20년 만에 서민생활이 더 힘들어진 것은 정치 민주화만 되었고 경제 민주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치 민주화는 되었는데 경제 민주화가 안 되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치가 제대로 민주화되면 정책이 민의를 반영하게 되고 따라서 당연히 경제 민주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선거나 제때 치른다고 민주주의가 되는 건 아니다. 군홧발만 민주주의를 짓밟는 게 아니다. 만약 공권력이 금권의 포로가 되어 있다면 우리는 결코 민주주의를 하고 있다 말할 수 없다. 만약 믿을 만한 삼성 특검이 구성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다시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거리로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잊어서는 안 된다. 10년 전 외환위기라는 참담한 국란을 겪은 것도 투명성 결여가 큰 원인이었다. 성장동력이 약화되고 양극화가 심화되는 데는, 공정한 경쟁과 사회적 우선순위에 입각한 합리적인 자원배분이 이루어지지 않고 힘있는 경제주체들에 의해 자원 배분이 왜곡되는 것이 큰 원인이다. 경제 민주화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삼성그룹에 대한 각종 의혹이 철저히 밝혀진다면 우리는 경제 민주화를 향한 거대한 전진을 이룰 것이다.
유종일/KDI국제정책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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