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2.12 18:41
수정 : 2007.12.12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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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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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살림가족살림
대선이 코앞에 다가왔다. 개혁진보세력은 지리멸렬이다. 위축될 대로 위축된 주제에 그나마 사분오열이다. 흠집투성이의 보수후보는 난공불락의 압도적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개혁진영에 패배주의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우선 낮은 투표율이 걱정이다. 주위에 있는 민주화 동지들 가운데 많은 이가 투표할 마음이 없단다. 또 일각에선 국민을 원망하는 소리도 들린다. 결국 정의는 승리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승부는 사실상 결정되었는데 투표는 해서 뭐 하나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옳지 않은 태도다. 그런 식이면 누구나 자신의 한 표가 당락에 영향을 줄 확률은 거의 영이기 때문에 한 사람도 투표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사실상 이길 가능성이 없는 스포츠 경기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듯 선거에 임해야 한다. 더구나 2위 자리를 놓고도 보수 후보와 싸워야 하는 형국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국민을 탓하고 원망하는 것은 정말 삼가야 한다. 물론 대중의 선택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가 중우정치로 귀결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하지만 민심은 천심이라 했다. 비록 잘못된 선택이라 할지라도 민심이 한쪽으로 기울었다면 거기엔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민심을 잘 돌아보는 것, 이것이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새로운 전망을 세우는 첫걸음이다. 사실 민심의 경고는 한두 번 있었던 게 아니지 않은가?
개혁진보세력은 이념에 사로잡혀 쓸데없는 싸움이나 하고 정작 중요한 민생은 돌보지 않았다는 것이 민심의 판단이다. 그렇다. 비정규직 차별과 고용불안에, 재래시장과 영세자영업의 몰락에, 치솟는 집값과 사교육비 부담에 민생이 흔들리는데 과연 개혁진보세력은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했는가? 행정부와 의회를 통째로 맡겨주었는데도 걸핏하면 언론과 야당 탓이나 하지 않았는가? 심하게 말하면 권력에 도취하고 돈맛에 정신이 흐려져서 방향감각을 상실한 것이고, 너그럽게 봐주어도 몹시 무능해서 우왕좌왕하다가 세월만 간 것이다. 어떻게 평생 민중의 편에 서서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우리를 외면하고 평생 특권층으로 살면서 사리사욕을 채운 사람을 지지하느냐고 항변하기 전에 한가지 사례만 생각해 보자. 이명박 서울시장이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를 정면으로 돌파하며 버스노선 개편 등 대중교통 개혁을 추진하고 있을 때 참여정부는 유류세와 담뱃값 인상 등으로 서민 부담을 가중시켰다. 대중은 추상적인 논리보다 경험을 중시한다.
권력과 돈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사람들은 억울할 것이다. 사실 필자는 연초에 이 지면에서 참여정부는 말로만 개혁과 진보를 외쳤지 정책은 전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참여정부의 실패를 개혁진보세력의 실패로 규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개혁진보세력의 궤멸적 위기를 맞이한 지금은 이런 주장도 위안이 되지 못한다. 설사 정권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하더라도 잘못 가는 정권을 더욱 날카롭게 비판하고, 더욱 치열하게 대안을 제시하고, 더욱 강력하게 노선투쟁을 하지 못한 것을 반성해야 한다.
위기는 기회라 했다. 개혁진보세력이 이제 위기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고자 한다면 먼저 철저하게 깨져야 한다. 어설픈 실용주의나 잡탕식 통합이 길이 아님은 이제 명확해지지 않았는가? 집권 십년 만에 어느새 흐트러져 버린 가치의 재정립과 자기정화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각 분야에서 더 열심히 연구하고 실천하며 실력 쌓기에 들어가야 한다. 결단코 희망을 놓아서는 안 된다. 결국 정의는 승리하고 역사는 진보한다.
유종일/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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