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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23 20:25 수정 : 2008.01.23 20:25

김용창/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나라살림가족살림

칠순을 훌쩍 넘기신 시골의 부모님은 눈비가 조금이라도 많이 올라치면 아직도 어김없이 전화로 괜찮으냐고 물어 오신다. 손발톱이 빠지고 손등은 거북 등껍질이 되도록 평생 흙과 전쟁 아닌 전쟁을 하셨다. 대가 없는 그 고생의 최대 수혜자인 나는 그저 아내와 어린 딸아이를 시켜서 안부 전화를 넣는 게 고작이다.

우리 세대의 부모님들은 일제의 폭압기에 태어나 해방의 혼란기와 한국전쟁을 거치고, 얼마 되지 않는 땅뙈기와 비인간적인 공장에서 미친 듯이 일만 했다. 고향을 등지고 탈 수밖에 없었던 상경열차는 한 세대를 그렇게 한국 사회 중흥을 책임지도록 몰아넣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를 일으킨 이 세대는 호의호식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세대가 되었다. 이 서글픈 세대는 자신을 위한 인생의 반란 한 번 하지 못했다. 그래서 감히 이들을 ‘희생의 세대’라고 이른다.

그들은 왜 그랬을까? 무엇 때문에 소 팔고, 땅 팔고, 막노동, 중노동을 하면서 자식 세대 교육에 인생을 송두리째 쏟아 부었을까? 한 번도 ‘주체적 개인’으로 사람답게 살아보지 못한 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혼신이 역동성을 가져왔고, 그동안 우리 사회는 개인의 노력과 노동으로 얼마든지 나은 삶과 생활 수준을 누릴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은 말 그대로 초국적 자본주의 격랑에 파묻히고 신자유주의 이념의 포로가 되어 자본 만능의 시대가 되었다. 새 정부는 출발부터 친기업 정부임을 자처하고 나섰다. 그러나 사회는 자본과 자본가로만 만들어지지 않으며, 한국 자본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노동자와 그 노동자를 교육시킨 희생의 세대가 없었다면 싹조차 트지 못했다.

우리 사회가 노동자 독재는 그토록 무서워하고 경원시하면서 자본 만능 시대의 자본독재 위험성은 왜 살피려 하지 않는가? 부동산 재산을 지켜주기에 여념이 없는 이념과 언론, 환경오염에 우선하는 돈의 단순논리, 변칙·불법적인 부의 세습, 불법적 비자금 공화국, 만연하는 불공정 거래, 힘없는 직원에 대한 상품 강매, 상생을 도외시하는 불공정 하도급 거래, 지역 독선주의, 이것이 여전히 한국 자본주의 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정치·언론·학문·사법부는 점점 이러한 자본과 자본가를 견제하지 못하며, 독립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온갖 불법을 저질러 놓고 걸핏하면 환자 손수레에 걸터앉아 시위하는 대자본가를 애써 외면한다. 이러한 모습들이 자본의 권력화와 독재화를 부르고, 사회에 조직적 왜곡과 신종 신분세습을 초래한다.

개인으로 돌아와 보면, 자본 중심의 신자유주의 시대에 심화되는 양극화 때문에 이제는 누구의 자식, 어떤 집에서 태어났는가가 그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것은 희생의 세대가 그토록 극복하고자 했던 희망이 그 세대가 가기도 전에 자본주의적 신분제로 퇴보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것은 불행이다. 자신의 노력과 노동과 삶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상관없이 미래가 결정되면, 지금껏 한국 사회를 끌고 왔고 전세계 후발국 중 유일하게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룩한 한국의 기본적인 동력을 상실하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친기업 정부도 좋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대통령 당선인 자신이 봉급쟁이에서 출발하였듯이 진정으로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한 밑돌을 놓고 싶다면 단순한 친기업 정부가 아니라 자본독재와 자본주의적 신분제 고착을 경계하여 평민의 꿈을 이어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최소한의 동등경쟁 조건조차도 만들지 못하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

김용창/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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