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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11 19:36 수정 : 2009.03.11 19:36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삶과경제

신영철 대법관의 거취가 연일 논란이 되고 있다. 이 글을 작성하는 시점까지는 아직 당사자로부터 아무런 거취표명이 없었지만 사태는 이미 되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신 대법관은 사퇴해야 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번 사태는 한 사람의 일탈적 행동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축적되어 온 사법부의 모순이 한 사람의 일탈적 행동을 계기로 하여 폭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를 마치 도마뱀이 제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듯이 한 사람의 자진사퇴 정도로 얼버무린 채 슬그머니 덮어 버려서는 안 된다. 땅에 떨어진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가시적인 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욕심을 줄이고 정의를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런 제도적 장치 없이 무턱대고 판사에게 이것을 주문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도 인간이기에 때로는 유혹에 굴복할 수도 있고 때로는 권력과 타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몇 가지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

사법부의 신뢰회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는 법관에 대한 재임용을 철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105조 제3항은 일반 법관의 임기를 10년으로 한정하고 있다. 물론 연임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으나 법원조직법 제45조의 2 제1항에 의하면 연임은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거치도록 되어 있고, 제2항 제3호에 의하면 판사로서의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 현저하게 곤란한 경우 대법원장은 연임발령을 하지 않도록 규정되어 있다. 법관이 대법원장이나 대법관의 말을 무시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에 비해 미국 연방헌법은 (일부 파산법원 판사를 제외하고는) 모든 법관을 종신직으로 임용토록 하고 있다. 이러니 법관의 독립성이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하급심 판결의 신뢰성과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다. 원래 법관은 헌법 제103조의 규정에 따라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재판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자신의 판결이 자꾸 상급심에서 뒤집어질 경우 부지불식간에 상급심 재판부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경우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여 법률을 새롭게 해석하는 판결은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물론 하급심 판결의 신뢰성을 높이라는 말이 하급심의 판단이 잘못된 경우라도 상급심 재판부가 무조건 이를 용인하라는 뜻은 아니다. 잘못된 판결은 당연히 바로잡아야 한다. 필자가 주장하는 것은 가능하면 하급심 판결의 수준을 높여서 좋은 판결이 나오도록 하여 상급심 재판부가 개입해야 할 필요성을 줄이자는 말이다. 물론 이것은 공짜로 될 수는 없다. 하급심 판결의 질적 수준을 제고하기 위해 사법부는 보다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대법관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법관은 원칙적으로 법률심만을 하도록 되어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여러 가지 우회적인 방법으로 사실심을 하고 있다. 물론 이 때문에 엄청난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관들이 ‘재판에 대한 의욕’을 버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그것이 대법관의 ‘적절치 않은 욕심’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사건의 판결을 궁극적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은 대부분의 경우 경제적인 보상과 결합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대법관은 ‘재판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좋은 판례를 통해 법률의 지평을 새롭게 하는 것’에만 관심을 한정하는 것이 옳다. 사법부가 다시 태어나려면 대법관부터 변해야 한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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