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원 일본 사이타마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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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경제
현대차가 선전하고 있다. 격전지인 북미시장에서 지난 1월 현재 도요타가 전년 대비 30% 이상 판매량을 떨어뜨린 반면 현대차는 15% 가까이 이를 높였다. 이런 결과, 도요타가 지난해 9월 이후 3000명 이상의 비정규직을 정리한 데 비해 현대차는 기본적으로 고용을 유지하고 있다. 농담 반으로 “한국이야말로 종신고용 국가”라는 얘기까지 들린다. 무엇이 현대차로 하여금 경제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삼게 하고 있는가. 제네시스가 북미에서 올해의 차로 선정된 데서 볼 수 있듯이 현대차의 품질 향상과 공격적인 마케팅이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하지만 국외 실적 향상의 주된 이유가 2배 가까이 뛴 환율 때문이란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취약성이 수출기업에 거꾸로 경쟁력을 제공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경쟁력의 지속 가능성이다. 당장 하반기에라도 환율이 안정을 되찾으면 수출 신장세가 벽에 부닥칠 것은 뻔하다. 더 근본적으로는 가격 중심의 개발도상국형 체질에서 탈피하지 못한 점을 들 수 있다. 평소 도요타 노동자가 연 2000시간을 일할 때 현대차는 2400시간을 일한다. 3000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도 적지 않다. 장시간 노동을 통해 설비가동률을 높이고 시간당 인건비를 줄임으로써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하지만 장시간 노동은 필연적으로 생산의 효율을 떨어뜨린다. 그뿐만 아니라 생활의 질을 낮추고 출산·양육에 악영향을 주어 사회의 건강한 재생산을 저해한다. 이를 타개하고자 현대차 노사가 작년 9월에 합의한 것이 주간 연속 2교대제의 도입이었다. 현행 10시간씩의 주야 맞교대 근무를 기본적으로 8시간씩의 주간 2교대제로 바꿈으로써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대신 생산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현재의 생산물량을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동시에 노사는 월급제 도입에도 합의했다. 현행 시급제는 노동자들로 하여금 연장근무나 휴일 특근에 과도하게 의존케 하는데다 생산의 탄력성을 저해하는 큰 단점을 지닌다. 생산물량에 의해 노동자의 수입이 직접 규정되는 탓에, 인기 있는 차종을 생산하는 라인의 물량을 그렇지 않은 라인에 이관하기가 힘들고, 이는 수요만큼만 공급하는 유연한 생산을 제약하는 것이다. 이처럼 주간 연속 2교대제는 생활의 질과 생산성 향상을 양립시킨다는 점에서 개발도상국형 생산 시스템을 선진국형으로 바꾸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런데 힘들게 이루어진 이 합의가 현재 좌초 직전의 상황에 내몰려 있다. 그 이유는 지나칠 만큼 단순하다. 회사로서는 경제위기로 생산량이 줄고 있는 만큼 이전의 임금 수준을 월급제로 보장하기 힘들다는 것이고 노조는 이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한 푼이라도 인건비를 절약하고 싶은 것이 회사의 생리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단기적 이익타산 때문에 중장기적인 전략과 비전을 소홀히 하는 기업을 높게 평가할 사람 또한 없다. 현대차 경영진은 바람직한 제도의 확립이 더 중요하다는 경륜을 갖고 합의 이행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노동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면 약간의 임금 삭감은 감수하는 것이 상식이다. 현재로서 이전 수준의 임금을 보전하기 힘들다면 먼저 주간 연속 2교대제를 도입하고 향후 생산량의 회복에 따라 월급 수준을 재론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를 이끌어낼 수 없는 노조에게 어떻게 우리 사회의 중장기적 발전을 지탱하는 한 축을 기대하겠는가.현대차 노사는 국외 경쟁이 유리한 지금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 기회를 놓치면 나중에 이것이 위기가 되어 스스로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우종원 일본 사이타마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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