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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3.24 20:23 수정 : 2010.03.24 20:23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





맹장염 수술 약 2000만원, 자연분만 400만원, 감기 진찰 한 번에 10만원. 보험이 없으면 미국의 의료비가 엄청나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미국에 와서 실제로 그 금액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선진국 중 유일하게 전국민이 의료보장을 받지 못하는 미국에서 보험이 없는 가난한 이들이 아파서 병원을 가면 정말 큰일이다. 한 해 파산을 신청하는 가계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의 파산 원인이 바로 의료비 부담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국의 민간의료보험료는 너무 비싸서 인구의 17%인 5400만명이 의료보험 없이 생활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보험료 상승으로 직장에서 보조하는 의료보험의 비중도 줄어드는 추세여서 의료보험 문제는 악화일로에 있다.

이런 미국이기에 최근 며칠간 사람들의 눈과 귀는 온통 하원의 표결 결과에 쏠려 있었다. 3월21일 오바마 정부의 의료보험 개혁안이 결국 하원을 통과한 순간, 많은 미국인들은 환호했고 또 일부는 한숨을 내뱉었을 것이다. 미국 의보개혁 수정안의 주요 내용은 앞으로 10년간 약 9400억달러를 투입해 무보험자 약 3200만명에게 보험의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가 무료로 제공하는 보험인 메디케이드의 대상이 되는 빈곤층의 범위를 확대하고 중산층에겐 보조금을 지급하여 의료보험 수혜 대상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또다른 중요한 조처로서 개인이 풀을 이루어 의료보험거래소에서 보험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고, 보험회사들을 규제하는 조처들도 도입되었다. 1912년 루스벨트의 대선공약 이후 100년이 되도록 실현되지 못했던 전국민 의료보험의 꿈이 이제야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다. 먼저 재원과 관련해서 미국 정부는 다양한 비용절감안과 함께 고소득층에 대한 세금을 추가로 부과하는 안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 전망이 확실치는 않다. 따라서 이번 개혁안은 중산층 이상에게는 세금 부담, 그리고 기업에는 보험료 부담을 준다는 비판도 있다. 사실 혜택을 받는 이들은 적지만 부담을 지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국민여론은 의보개혁안에 썩 호의적이지 않았다. 또한 공적 보험을 옵션으로 도입해 과도한 민간보험료를 인하시키려는 계획은 보수파의 반발과 보험회사의 로비로 이번 안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미국의 민간보험회사들은 보험료 중 상당부분을 보험금 청구를 거절하고 의료기록을 감시하기 위해 사용하는데, 이들의 횡포를 막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개혁은 오바마 정부 최대의 정치적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국민과 정치인들에게 트위터로 직접 호소하는 대통령의 리더십과 엄청난 재정적자와 국론 분열 속에서도 서민을 위한 의료개혁을 이루어낸 정부의 뚝심은 분명 부러운 것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의의는, 세금이 들더라도 가난한 이들의 생활을 사회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복지 확대의 길을 미국이 선택했다는 점이다. 무엇이든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가 득세하며 오랫동안 불평등이 심화된 세계 최강대국의 이러한 전환은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닐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와는 반대로 병원이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거절할 수 있도록 하는 당연지정제도의 폐지 계획이 논란이 되었고,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영리병원 도입과 의료 민영화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존재한다. 국민을 위한다는 우리 정부와 정치인들은 미국의 의료보험 개혁을 보며 과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오바마가 의회 연설에서 인용한 링컨의 명언, “내가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법은 없지만 나는 반드시 진실해야 합니다”가 귓가에 울린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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