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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30 20:04 수정 : 2006.06.09 16:25

신영전/한양대 의대 교수·예방의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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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급여 문제로 정부가 부산하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취임하자마자 처음 받은 숙제는 바로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의료급여 진료비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유 장관은 ‘의료급여 재정혁신 희망기동대’까지 만들었다. 정부 자료를 보면 2005년 의료급여 진료비 청구액은 약 3조3천억원이고 이는 전년보다 26.8%나 늘어난 수치다. 4~5년 만에 거의 두 배로 증가한 것이다. 더군다나 이런 증가가 계속된다면 올해 의료급여 재정부족액은 약 4500억원에 이르러 지급불능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급격한 진료비 증가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대책들은 ‘심사조정 강화’ ‘수급자 신고보상제’ ‘수진자 내역조회’ ‘약국의 허위부당 청구 발굴’ 등이다. 요약하면, 이른바 ‘부정수급자’를 잡아내고, 의료급여 대상자들의 ‘부정 의료서비스’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쓸 돈을 정해 놓고 그 이상은 못 쓰게 만들겠다는 안도 있다. 여기에 동원되는 것이 이른바 수급권자의 ‘도덕적 해이’ 논리다. 다시 말해 이 사태의 근본 원인이 수급권자의 의료남용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형적인 마녀사냥이다.

의료급여 환자는 나이가 많고 더 심하게 아프니 진료비가 더 많이 나오는 것이 당연한데도, 이를 고려하지 않은 건강보험과 의료급여 진료비 비교표가 의료남용의 증거물로 이번에도 어김없이 다시 등장한다. 갖은 구박을 무릅쓰고 자신을 따뜻하게 보살펴줄 주치의를 찾아 여기저기를 헤맨 열 가지 이상의 복합 질환을 가진 75살 할머니는 순식간에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 범죄자가 돼버린다. 여기에 복지병을 걱정하는 보수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맞장구를 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의료급여 진료비의 증가는 대상자 수의 증가와 노령화가 주원인이다. 또한 진료비의 낭비는 기본적으로 행위별 수가제 아래서 적절하게 관리되지 못하고 있는 공급체계 때문이다. 다시 말해 수급자가 아닌 ‘정부와 공급자의 도덕적 해이’가 주원인인 것이다.

이렇게 잘못된 진단에 기초한 정책대안은 실효성을 가지지 못한다. 또한 의료급여와 관련한 대부분의 정책결정은 중앙정부의 건강보험과 기초생활보장 등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반면, 그 정책에 대한 책임은 구체적인 정책수단이나 권한을 가지지 못한 의료급여 부문과 지방정부가 떠맡고 있다. 무엇보다 현 정부 정책안에는 건강보험이 가난하고 아픈 이들을 의료급여로 ‘밀어내는’ 기전을 막는 장치가 없다. 더욱이 대규모의 차상위 계층 문제, 낮은 보장성과 차별 문제 등에 대한 대책 없이 재정절감만을 목적으로 한 정책은 그 자체로 효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설령 대상자를 10만명 줄인다 해도 여전히 300만명의 의료급여 수급 ‘대기자’가 기다리고 있고, 보장 수준을 낮추려 해도 수급권자는 이미 너무 낮은 보장성과 각종 차별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람직한 의료급여제도의 개혁은 재정절감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견고한 건강안전망의 구축’과 ‘지속가능한 효율적 재정운영’이라는 두 개의 기둥 위에 세워져야 한다. 또한 현행 건강보험, 기초생활보장, 의료급여, 그리고 중앙과 지방정부 모두가 ‘위험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건강보장과 보건의료체계 전반의 구조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각종 차별적 상황이 함께 해결돼야 한다. 그러지 못할 경우, 날로 심화하는 사회양극화 속에 우리 사회는 삶의 마지막 보루인 건강안전망마저 작동하지 않는 총체적 난국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예방의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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