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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17 18:31 수정 : 2006.06.0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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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 4천여명 중 네 사람이 자살하였다. 이는 일반 인구에서 나타난 자살률보다 상당히 높은 비율이다. 그들은 심리적 고통을 견디기 어려워 자살을 하였다고 한다. 5·18이 일어난 지가 24년이 지난 시점에서 무엇이 그들을 자살까지 몰고 갔을까? 당시의 심리적 충격이 아직도 아물지 않았는가? 광주 오월의 아픔은 그들에게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가? 많은 의문이 꼬리를 문다.

사람들은 통상 역사적 사건 자체에만 관심을 갖고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실제 어떤 신체적·심리적 고통을 받고 있는지에는 별 관심이 없다. 5·18에 대해서도 정치적·역사적 의미에는 관심을 둔다. 그러나 항쟁의 주역들이 당시 겪은 충격적인 경험들이 심리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 후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세월이 지나면 사건 자체만 남고 당시의 사람들은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개인이 겪는 급격한 환경적 변화, 신체·정신적 위해는 개개인에게 심리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후의 삶에도 지장을 준다. 그러한 의미에서 5·18은 이를 직접 경험한 사람들에게 심리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현장 경험, 이유 없이 두들겨 맞은 경험, 어디론가 끌려간 경험, 고문을 당한 경험, 체포되어 사건 조작으로 수감된 경험, 그리고 그 후에도 계속 감시를 받았던 경험 등은 개인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 경험들을 고통스럽게 회상하며 반복적으로 악몽에 시달린다. 과도하게 사람을 경계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며 정서적으로 위축된다. 또한 우울에 빠지고 허무감에 사로잡혀 세상을 살기 싫어하기도 한다. 이것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한다.

지난해에 5·18 민주 유공자의 심리적 후유증을 조사하였다. 25년의 세월이 지났으니 어느 정도 그들의 심리적 고통도 가라앉았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의외였다. 5·18 민주 유공자 셋 중 한 사람꼴로 아직도 외상후 스트레스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 정도는 정치적 탄압을 피해 망명을 한 난민, 고문 피해자, 그리고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의 외상후 스트레스에 버금갈 정도로 심각하였다. 이는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의 심리적 충격이 생생한 현실처럼 잊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들이 경험한 고통스러운 기억의 상처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으로 고스란히 각인되고 있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세월이 지나 만성화한 것이다. 5·18로 말미암아 아직도 그들이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면 정신건강을 회복하도록 돕는 전문적 클리닉이 필요하다. 이 클리닉은 5·18 당사자의 심리적 고통뿐만 아니라 고문 등의 국가폭력으로 말미암아 외상후 스트레스를 겪는 사람들의 아픔도 치유해야 할 것이다.

국가폭력이 얼마나 잔인하며 개인에게 얼마나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야 한다. 그래서 다시는 그런 비극이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게 하여야 한다. 5·18을 망각보다는 기억으로 풀어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그래야만 광주 오월은 또다른 자리매김을 할 수 있다.

오수성 /전남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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