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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21 21:46 수정 : 2006.06.09 16:28

윤여송 인덕대 토목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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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건희 회장 일가에서 8000억원을 사회에 조건 없이 내놓겠다고 한 지도 벌써 석달이 넘었지만 아직도 구체적인 운용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아마 흔치 않은 큰 규모의 출연금이므로 각계각층의 많은 관심 속에서 뚜렷한 명분을 찾지 못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 기금의 모체가 이건희 장학재단이기 때문에 교육사업에 쓰여야 된다는 배경과 “빈곤 세습과 교육기회 양극화를 막기 위해 소외 계층과 저소득층에 사용하는 방안의 타당성”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언급을 고려할 때 삼성 8000억원이 가야 할 곳은 직업교육 육성을 위한 장학사업이라고 생각된다.

각종 조사에서 실업고 재학생의 가계 상황은 인문계 학생의 가정에 비해 많이 안 좋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들의 상당수가 진학하는 전문대학 재학생의 경우 가계곤란자로 구분되는 지역건강보험 4만6천원(월) 미만이 55%에 이르며, 가장 극빈한 기초생활수급권자의 자녀가 전체 재학생의 2%에 해당한다. 정부의 재정지원에서 교육기관 간의 양극화도 심각하다. 매년 전문대학 진학자는 전체 대학입학자 중 약 40%에 이르는 규모이나 교육인적자원부의 재정지원은 4년제 대학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고 정부 각 부처의 지원금에서도 대학의 2%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전문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4년제 대학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각종 장학기금도 4년제 대학에 몰려 있어 전문대학에는 이렇다 할 대외장학금이 전혀 없다. 김밥장사 할머니도 어려운 가운데 모은 돈을 장학기금으로 내놓을 때는 어찌된 영문인지 4년제 대학에 기탁한다. 이와 같이 교육의 양극화가 극심한 현실에서 소외된 기관과 학생들에게 재정적 도움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는 직업교육이 점차 실종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실업고 졸업생의 4년제 대학 정원외 입학을 3%에서 5%로 확대하는 방안은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안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직업교육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제라도 정부는 실업고와 전문대학의 연계가 강화된 제대로 된 ‘직업교육 트랙’을 구축하는 정책을 수립하여야 한다. 그 실행 파일 중의 하나로 가칭 ‘직업교육진흥장학재단’을 설립하여 실업고를 졸업하고 전문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학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권하고 싶다.

이는 중소기업을 지원해야 할 책무가 있는 삼성으로서도 바람직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오늘날 세계적 규모의 국내 대기업들의 영광은 그동안 말없이 흘렸던 중소기업들의 땀과 열정이 그 밑바탕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지금 중소기업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과제는 잘 훈련된 산업인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삼성의 기금이 산업인력을 양성하는 데 쓰인다면 중소기업의 인력난 해소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직업을 갖기 위한 교육에 돈이 없어 학업의 기회를 놓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는 실업고와 전문대학에서 공부하는 ‘잊혀진 학생’들을 위한 국가적 규모의 장학재단을 만들 필요가 있다. 삼성의 8000억원이 직업교육 분야에 쓰인다면 교육 양극화 해소를 위한 소외계층의 장학사업으로서, 또한 중소기업의 인력난 해소를 위한 직업교육 활성화 사업으로서 그 명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윤여송 인덕대 토목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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