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5.22 18:38
수정 : 2006.06.09 16:29
기고
3기 방송위원과 방송위원장 선임이 미뤄지고 있다. 덩달아 방송통신통합추진위원회의 구성이 어려워졌고, 〈한국방송〉과 〈교육방송〉 사장 등 방송계 수장 선임 역시 파행을 겪게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진보하는 디지털미디어 시대에 부응하는 시급한 정책들이 표류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법을 어겨가면서 왜 방송위원의 선임을 미루는가? 방송위원 선임권을 가진 정치권이 아직도 방송에 대한 영향력 행사라는 유혹을 받고 있는가?
제발 정치로부터 방송을 자유롭게 하자. 애초 방송법에서 9명의 방송위원 중 상임위원 수를 4명으로 정한 것은 최종 의결권을 전체 위원회가 갖도록 한 합의제기구의 기본 정신이었다. 그런데 2기 방송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여야가 야합하여 상임위원 수를 전체의 반이 넘는 5명으로 늘렸고, 각 당의 논공행상에 따라 전문성보다는 충성도를 고려해 방송위원들을 선임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전문가의 이름으로 전·현직 방송인들을 전진 배치해 지상파 방송사의 이해를 대변하는 로비스트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어설픈 전문가로 포장한 정치색 짙은 인물들로 방송위원회를 구성한 책임에서 여야 모두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방송이 정치권이나 특정 이해집단에 발목이 잡히면 방송의 진실성은 허물어진다. 방송이 표현하고 전달하는 세상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방송을 정치도구로 만들었던 역대 정권의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 80년대 이후 얼마나 많은 국력이 소모되었는지 벌써 잊었단 말인가?
우리 국민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방송 역사를 경험하면서 방송을 독립시키는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해 왔다. 방송이 정치권력이나 자본, 그리고 방송 안팎의 이해집단으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할 수 있도록 그 틀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바로 방송의 독립을 이루는 단초라고 믿었다. 그런데 방송 독립의 상징이라 생각했던 방송위원회가 정치권력과 각종 이해집단으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못한 구조를 갖는다면, 어떻게 방송의 독립을 확립할 수 있는가?
여야 정치권은 더는 복잡한 이해득실로 방송위원 선임을 둘러싼 정치게임을 되풀이하지 말라. 대통령 추천 몫과 국회 추천 몫으로 방송위원을 배분한 애초 목적은 국민의 대표성을 가진 헌법기관이 정치성을 떠나 전문성을 가진 인사로 방송위원을 구성해 달라는 국민적 열망을 담은 표현이었다. 특정 방송사나 정당의 이해를 대변하는 인물이 아니라 급변하는 매체환경을 정확히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지닌 각계의 전문가들로 방송위원을 구성해 달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애초 방송 개혁을 추진하면서 이루려 했던 정책과제들은 지금 어찌 되었는가? 무엇보다 방송의 독립을 위해 정치권과 이해집단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일은 어찌 되었는가? 이들 물음에 어느 하나 명쾌한 답을 들을 수 없는 오늘의 현실, 그것이 다시 방송 개혁을 말하게 한다.
김대중 정부가 그 많은 난관을 뚫고 결단했던 일을 같은 뿌리를 가진 노무현 정부가 엇박자 놓는다면, 과연 정책의 일관성을 믿고 참여정부를 선택한 국민이 무엇이라 말할까? 방송 독립을 막는 이해집단의 모든 압력을 차단하고 방송을 방송답게 자리매김했다는 역사적 평가를 듣는 정부가 될 수는 없는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강대인 건국대 교수 전 방송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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