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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28 18:50 수정 : 2006.06.09 16:34

변광수 한국외대 스칸디나비아어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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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유럽 5개국을 단체여행하면서 두 가지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우선 런던, 파리, 밀라노, 로마, 프랑크푸르트 등지에서 가는 곳마다 수십, 수백 명의 한국인 관광객 물결과 마주치면서 1970~80년대의 일본인을 대신해 한국인 천하가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성수기인 여름철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인파가 세계로 나간다니 해외 관광이 이미 대중화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한국이 가난한 전쟁·고아의 나라에서 부자나라로 급부상한 징표이며 한국인들의 헤픈 씀씀이 또한 국부를 과시하기에 충분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영국, 독일,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등이 모두 비슷한 사회복지 제도 아래 의료·교육·보육·노후연금 등을 국가가 보장해 주며, 이를 위해 국민들은 40~60%의 고액 세금을 기꺼이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함께 잘살아야 한다는 범국민적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보수정당들도 동참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덕분이다. 반면 외국에서 드러나는 화려한 한국인들과는 대조적으로 국내의 가난한 서민층과 생활고로 인한 집단자살자, 결식어린이 등을 떠올리면서 이야말로 양극화의 극명한 실상이요, 풍요 속의 빈곤임을 절감하였다.

양극화 문제는 요즘 나타난 갑작스런 현상은 아니다. 한강의 기적을 노래하던 고도성장 시대에도 빈부격차는 있었다. 최근 경기침체로 격차가 너무 심화하니 그런 이름이 붙었을 뿐이다. 해결방안으로 부유층과 이윤이 많은 기업의 조세 부담을 좀 늘리면 어떠냐는 노무현 대통령의 제안에 보수층의 반대 목소리가 벌집을 쑤셔놓은 듯 요란하다.

빈부격차 해소에는 성장정책이 최선일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오늘의 극심한 격차는 지난 30년간 압축성장 과정에서 성장과 시장만능주의 신화에 빠져 분배를 도외시한 필연적 결과다. 분배를 말하면 아직은 나눌 열매가 없다며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는 돼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누워만 있던 갓난아기가 어느날 갑자기 서서 걸어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로 복지제도 역시 단계적으로 능력에 걸맞게 시책을 도입해야 한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이른 오늘에는 상당한 정도의 사회안전망이 이미 구축되었어야 마땅하다.

복지국가 선발주자 스웨덴은 국민총생산(GNP)의 개념조차 없던 1930년대에 모든 국민의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려는 ‘국민의 가정’(folkhem)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국가 핵심정책으로 세우고 노력한 끝에 60년대에 복지사회의 기본 틀을 완성하였다. 부의 공정한 분배를 통한 개개인의 인간다운 삶을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 없이 3만달러, 5만달러 시대만을 기다린다면 양극화는 더욱 확대 심화할 것이다.

복지비용을 위해 세율을 좀더 올린다고 부자의 재산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도, 더 못살게 되는 것도 아니다. 이를 두고 좌파적 정책, 포퓰리즘으로 매도하는 것은 진정으로 민생을 걱정하는 자세가 아니다. 억만장자 빌 게이츠나 조지 소로스가 좌파라서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말했던가. 약자에 대한 배려 없는 성장만으로는 선진사회를 이룰 수 없다. 이념이나 정파를 초월하여 모두가 행복권을 추구하며 살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개혁의 길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변광수 한국외대 스칸디나비아어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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