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6.01 20:25 수정 : 2006.06.09 16:40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기고

바람으로 흥한 이는 바람으로 망하는 법인가? 열린우리당은 대통령 탄핵사태 후 4·13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이제야 뼛속 깊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먼젓번 바람이 수구보수 세력의 거대한 착란에서 비롯되었다 치고, 이번에는 왜 이렇게까지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을까?

일부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와 문구용 칼을 휘두른 괴한은 부차적인 요인에 불과했다. 근본적인 원인은 선의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은, 미숙하고 독단적인 ‘청교도’들의 자충수에서 찾아야 한다. 게다가 국민들은 차떼기를 하고 성추행을 하고 공천장을 팔아먹은 정당을 ‘대안세력’으로 여기기 시작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필자는 세계적으로도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이 승리하는 예를 잘 보지 못했지만 이번 경우는 패배의 규모와 내용이 충격적일 만큼 극심하다. 마키아벨리는 무릇 군주라면 대중으로부터 사랑받는 게 제일 낫지만, 그게 안 되면 차라리 외경의 대상이 되는 편이 낫고, 어떤 일이 있어도 증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정부는 어떠한가? 국민이 아닌 역사로부터 사랑받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원칙 없는 탈권위와 불필요한 요설로 외경은커녕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정당한 근거와 부당한 근거가 뒤섞인 엄청난 증오가 퍼부어지고 있다. 행정수도니 양극화 해소니 부동산 대책이니 하는 정책적 접근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대중 정치심리의 영역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장기적으로 진보정치의 가능성을 희구하면서도 중단기적으로 중도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던 많은 이들이 착잡함과 포기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5·31의 ‘전후 처리’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번 선거를 기점으로 민주화의 ‘긴 혁명’ 시대가 저물고 본격적인 ‘긴 반동’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정부가 그런 시대를 부른 당사자로 역사에 기록되고 싶지 않다면 ‘처음처럼’ 중도개혁 노선과 남북관계 발전에 매진하는 길밖에 없다. 여기서 다시 마키아벨리. 그는 정치의 불운은 홍수와 같아서 완전히 막기는 어렵지만 둑으로 그 영향력을 조절할 수는 있다고 했다. 어려울수록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필자의 진짜 관심은 지방선거 결과가 시민사회에 미친 영향이다. 오랫동안 척박한 현실 속에서 묵묵히 지역운동을 해 온 수많은 활동가들, 제대로 된 지방자치 한번 해보자고 도전장을 던졌던 ‘진짜’ 민주주의자들이 정치바람 앞에서 추풍낙엽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다. 지난 십여년 동안 민주화 정치세력과 시민사회 운동이 인적·물적으로, 노선적으로 어느 정도 연계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두 집단 사이에 긴장과 갈등이 없지 않았지만 어쨌든 상대적으로 말이 통하는 연결고리들이 형성된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한국 특유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시민사회적 가치가 많이 반영된 정치세력과, 정치화된 시민사회 사이의 상호의존형 모델이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다. 따라서 전자의 퇴조가 후자의 진로에 큰 영향을 끼치게끔 되어 있다. 이것이 우리 시민사회의 정직한 자화상이다. 요즘 부쩍 ‘일반대중’이 시민사회 운동에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향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느끼고 있다. 시민사회가 특별히 잘못해서라기보다 일반인들의 머릿속에 정치화된 시민사회와 노무현 정권을 동일시하는 ‘중첩효과’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그동안 넓은 뜻에서 누려온 정치적 영향력의 값을 톡톡히 치러야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시민사회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왕도가 없다. 반짝거리는 일회성 아이디어로 현상을 타개하려는 발상을 제발 버려야 한다. 이미 시민사회라는 공유지의 상당 부분을 자생적 보수단체와 우파 사회운동, 그리고 이익집단들이 점유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치개혁을 이끌어 온 ‘긴 혁명’의 공과를 냉정히 성찰하고, 특히 이제부터는 방향성만큼이나 방법론에 관한 고민에도 몰두할 일이다. 정부나 기업에 자원을 의존하는 논리개발의 유혹을 떨치고 독자적인 자원 동원과 조직 유지를 위한 힘든 대장정에 나서야 한다. “신참은 전략을 논하고 노병은 병참을 걱정한다”는 나폴레옹의 말도 있지 않은가.

풀뿌리 민주주의로 하방하고, ‘시민운동’이라는 집단적 색채가 옅더라도 활성화된 시민사회가 가능할지의 실험에도 착수해야 한다. 분권화하고 녹색화하고 인권 지향적인 시민정치 모델을 남북한 통합의 진전을 위한 밑그림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를 모색하는 과제도 시민사회의 몫이다. 5·31의 결과가 거친 홍수의 물귀신이 되어 시민사회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단단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이 글은 필자가 투표일 전날 온라인 〈창비 주간논평〉(5월30일)에 썼던 것을 토대로, 선거 결과 시점에 맞춰 〈한겨레〉 기고용으로 다시 쓴 것입니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기고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