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백주 건양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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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나라는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빠를뿐 아니라 심각한 만성병의 도전으로 어려운 시대를 맞고 있다. 우리나라의 치료기술은 매우 발전해 있어 질병 사망자의 비율은 줄어들지만 예방적 건강관리의 부족으로 만성병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노인인구 증가 속도를 앞지르는 노인 의료비의 빠른 증가는 사회가 늙어가는 것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고령화 사회에 대처하려면 노인 일자리 만들기와 각종 복지 대책도 중요하지만 더불어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대책은 바로 건강한 노후를 맞이하도록 하는 것이다. 건강은 장애의 발생을 줄여서 복지 대상자가 되어야 할 노인의 수를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건강한 노인은 가사노동 분담 등 생산적 활동에 종사할 수 있기 때문에 고령화로 말미암은 사회적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결정적 비결이 된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의 각종 건강 통계는 높은 흡연율을 비롯해서 건강검진을 받지 않는 노인이 40%에 이르고, 고혈압 및 당뇨 등 만성병의 꾸준한 치료율이 10~20% 정도에 그치는 등 사전 예방적 건강관리가 미흡함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 건강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당뇨·고혈압·결핵·암으로 숨지는 비율이 매우 높은 실정이다. 건강하게 노후를 보내려면 갓난아이 시절부터 꾸준한 건강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낮은 모유 수유율과 높은 저체중아 비율 탓에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건강은 밝지 않으며, 청소년기 및 청장년기 역시 체계적인 건강관리와 보건교육을 받지 못하여 흡연·음주 등 해로운 생활습관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과정을 겪은 미래의 노인들은 지금의 노인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건강상태를 보일 것이다. 최근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자 평생에 걸친 건강관리를 강조하고 있으며, 보건소·학교보건·산업장보건 등 공적 보건기관의 구실을 강화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환자가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지역사회(마을·학교·직장 등)로 찾아가 질병을 예방하는 데 필요한 서비스를 제때 받도록 꾸준히 도와주는 것을 의미한다. 지역사회에는 만성질병 및 건강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살아가거나 알아도 적절히 대응하지 않고 있는 주민이 많다. 여러 연구 결과, 충분한 보건기관과 인력을 확보하여 적절한 의료 이용과 사전 예방활동 안내 기능을 강화하면 경증 질병에 따른 의료이용은 늘리지만 심각한 중병 발생은 줄이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질병 사전 예방체계를 ‘보이지 않는 사회 하부구조’라고 하기도 한다. 정부는 최근 저출산·고령화 극복을 위한 기본계획을 발표하였다. 물론 이 계획에는 적극적 사전 예방체계 구축도 중요한 일부 내용으로 편성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도시지역은 보건소 하부기관으로 도시보건지소를 설치하고 농촌지역은 이미 있는 보건지소와 보건진료소의 기능을 통합하는 것을 포함하여 학교보건과 산업장보건도 모두 예방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이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계획은 획기적인 국가 사전 예방체계 구축에는 미흡하지만 첫걸음으로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적절한 예산 확보와 체계적인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성공을 거둘 수 없다. 저출산·고령화라는 사회적 위기를 딛고 적정출산 유도와 건강한 노령화를 달성하려면 과거 성장일변도 정책인 구호만의 건강에서 탈피하여 ‘건강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보편적 사전 예방체계를 실질적으로 꾸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임을 깨달아야 한다.나백주 건양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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