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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25 21:40 수정 : 2006.06.25 21:40

유종일/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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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성장한다는데 민생고는 나날이 깊어간다. 특히 고리대금으로 인한 서민들의 피해는 심각하다. 그 대책으로 법무부가 이자제한법안을 마련하자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반론이 일고 있다. 시장거래에 대하여 정부가 인위적인 제한을 가하면 사채시장이 음성화하고 금리는 더 뛰어 오히려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만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시장경제의 원리상 당연히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염려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보완적 정책의 시행 여부와 좀더 효과적인 정책대안의 존재 여부다.

요즘은 아무리 골수 자유시장론자라 하더라도 아동노동의 금지를 반대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러나 19세기 고전적 자유주의 시대에는 아동노동의 금지는 정부의 부당한 시장규제라는 것이 자유시장론자들의 상식적 견해였다. 어디까지가 인권이고 어디까지가 시장규제인지는 사회발전의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따지고 보면 이자제한과 마찬가지로 아동노동의 금지도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아이가 벌어오는 작은 돈이나마 없으면 최소한의 먹을 것도 마련할 수 없는 식구들 처지에서 보면 아동노동의 금지는 사형선고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이런 경우가 많다면 음성적인 아동노동시장이 형성될 것이고 아동 임금은 더욱 내려갈 것이다. 따라서 아동노동의 금지는 아동들과 그들이 속한 가족의 최저생계에 대한 사회적 보장이 병행되어야 실효성이 있고, 의무교육이 더불어 시행될 때에 진정한 효과를 거둔다. 실제로 이렇게 해서 착취의 대상이던 다수 아동들이 기본적인 건강과 교육의 혜택을 받게 된 결과 생산성이 크게 증가했고, 이는 선진국에서 20세기의 경제성장이 19세기 산업혁명기보다 현저하게 높아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보완적 정책이 받쳐주지 않는 아동노동 금지의 무력함은 지금도 여러 빈곤국들에서 아동노동, 심지어 아동 인신매매까지 횡행하고 있는 현실이 보여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자제한법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최저생계 보장이 필요하고, 나아가 마이크로크레딧 등 신용이 부족한 서민들을 위한 금융서비스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실효성 제고를 위해 철저한 감독과 단속이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자제한이 결코 완벽한 정책은 못 되지만 과연 더 나은 대안이 있는가? 반대론자들의 암묵적인 대안은 현상유지인 듯한데, 이는 무책임한 태도다. 급박한 사정에 내몰려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우선 사채라도 써야 하는 서민들이 평균 연리 223%라는 살인적 이자를 무는 것은 명백한 착취일 뿐만 아니라 십중팔구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자가 그들을 신용불량자로 내몰고 파산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시장기능은 아무런 답을 주지 못한다.

미국, 일본, 캐나다, 프랑스, 독일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이자제한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 우리보다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는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도 외환위기 전에는 이자제한법이 있었다. 제도금융권 금리가 지금보다 한결 높았던 1995년에도 사채시장의 평균금리가 연 24~36%에 불과했음은 실효성이 제법 있었음을 보여준다. 국제통화기금의 권고로 이루어진 터무니없는 짓들 가운데 하나인 이자제한법 폐지를 되돌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유종일/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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