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6.28 21:13 수정 : 2006.06.28 21:13

기고

지난해 7월15일 오전 10시 서울고등법원 403호 법정. “원심을 파기한다. 피고인은 무죄!”

판사의 단 한마디는 22년 동안 간첩, 간첩 가족으로 온갖 멸시와 홀대를 받아내야 했던 함주명씨와 그 가족들의 피눈물을 닦아주는 것이었다. “무죄”라는 한마디가 함씨와 그 가족들의 빼앗긴 세월을 되돌려줄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가가 저지르고 은폐해왔던 범죄행위를 국가가 고백하고 이를 시정하겠다는 반성적 성찰, 또다른 ‘함주명’들에게 희망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법정에 있던 이들은 손을 맞잡고 눈물을 흘렸다.

이른바 5공, 6공 조작간첩 피해자들은 반공사회에서 간첩으로 내몰려 고단했던 삶에 빛이 들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한결같이 바라는 것은 간단하다. 고문을 받았다는 사실, 고문을 못견딘 허위자백으로 간첩이 되었다는 사실, 검찰이나 법원이 애절한 호소를 무시하고 간첩으로 낙인찍었다는 사실을 인정받는 것이다. 반평생을 ‘나는 간첩이 아니다’라고 되뇌어왔던 간절한 소망에 지금이라도 귀기울여 달라는 것이다.

그래도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일까. 정말 반갑게도, 얼마 전 제주지방법원은 강희철씨에 대한 재심 결정을 내렸다. 또 서울지방법원에서는 인혁당재건위 사건 재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의 조사에 따르면 5·6공 군사독재정권 시절 ‘조작간첩’으로 내몰렸던 이들은 100명을 웃돈다. 이들은 한결같이 영장 없는 불법체포, 40~50일에 이르는 장기간 불법감금, 잔혹한 고문 등으로 하루아침에 ‘간첩’이 됐다. 검찰과 법원에서 무죄를 호소했으나 대개는 허위자백만을 유일한 증거로 삼아 무기징역 등 가혹한 중형을 선고받았다. 20년 안팎의 감옥살이 끝에 풀려났지만 고문으로 몸과 마음이 망가진 그들을 맞이한 것은 사회의 싸늘한 시선과 간첩이라는 낙인뿐이었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 국가권력의 인권침해 사건이 줄을 이었다. 나는 그 많은 사건 가운데서도 우선적으로 조작간첩 피해자들의 피맺힌 호소에 우리 사회가 귀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말대로 “가슴 깊이 사죄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믿는다. 대부분 사회적 소외계층, 법적 도움도, 여론의 주목도 받지 못하던 이들이 조작간첩 피해자가 되었던 저간의 사정을 확인할수록 그 믿음은 더욱 깊어간다. 반공이 최우선 가치였던 사회에서 간첩, 간첩 가족이라는 낙인은 주홍글씨와도 같은 것이다. 그로 인한 정신적 내상은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함주명씨에 대한 무죄 판결, 강희철씨에 대한 재심개시 결정이 내려지긴 했으나, 재심이나 손해배상소송을 어렵게 하는 제도적 요인은 아직도 굳건하기만 하다. 피해자는 많으나, 가해자(가해사실)는 찾아보기 힘들다. ‘간첩 누명을 벗기 전에는 죽을 수도 없다’는 피맺힌 절규를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우리에게는 진실을 감추고 은폐해온 비정상적인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진실은 꽁꽁 언 얼음장 아래서도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살아 있기 마련이다. 진실을 밝혀내는 일은 우리 사회의 비정상성을 거둬내고 사회적 고통을 치유하는 일이다. 조작간첩 피해자들에게 더 많은 재심의 기회가 주어져서 진실이 진실로 인정되기를 기대한다.

송소연 민주화실천가족운동 협의회 총무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기고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