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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29 18:37 수정 : 2006.06.29 18:39

홍현희 /소설가(필명 헨리 홍) 백석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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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다. ‘조선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벽초 홍명희(1888~1968)의 문학기념관이 아직도 없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 돌아보아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영국이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을 만큼 자랑스럽게 여겼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임화의 지적처럼 조선의 셰익스피어요 노벨문학상을 받기에도 충분했던, 소설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의 문학기념관은 복원 중인 그의 생가 옆에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가 월북하여 북한의 내각 부수상까지 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그의 이념이 아닌 그의 문학과 학문을 기념하자는 것이다.

역사학자 이이화씨에 따르면, 홍명희는 조선 5대 명문 출신으로, 한 대도 벼슬이 끊이지 않은 집안이었다. 증조부는 이조판서, 조부는 병조참판, 아버지는 장원급제하여 금산군수로 있다가 한일합방이 되자 치욕을 견딜 수 없어 자결했다고 한다. 그래서 홍명희 문학기념관은 단지 그의 문학만을 다루는 것을 넘어 그의 학문과 암흑기 민족운동가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을사조약의 부당성에 항의한 벽초의 선친 홍범식의 자결과 벽초의 항일운동은 친일로 얼룩진 수많은 지도자 가운데서도 우리 민족 지도자의 참 모습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더욱이 춘원 이광수, 육당 최남선과 더불어 조선 3대 천재 중에서도 제일이라고 알려진 그의 업적과 발자취가 그대로 묻혀 버리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문화재청이 지난 26일 벽초의 생가를 근대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는데, 이번에 등록 예고된 충청북도 괴산읍 제월리 고가는 그의 생가가 아니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원래 그의 생가는 괴산읍 동부리 450-1에 있었으며, 현재 괴산군에서 막대한 예산을 들여 복원 중이다. 제월리 고가는 벽초의 재산을 관리해주던 서주사라는 사람이 살던 곳이다. 벽초의 동생에 의해 동부리에 있는 300년 된 벽초의 생가가 팔린 뒤에 벽초 일가가 제월리로 와서 기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곳이 생가는 아니다. 더욱이 제월리 고가는 본채가 없는 행랑채일 뿐이다.

생가가 아닌 고가를, 그것도 초라하게 남은 행랑채만을 생가라고 지정 예고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괴산군에서는 벽초의 생가 복원은 이미 국제적으로도 관심을 끌고 있다고 말한다. 이참에 문학기념관 설립이 탄력을 받아 추진되었으면 좋겠다. 문인들 사이에는 기념관을 서울에 세우자는 의견도 있지만 그래도 생가 옆에 세우는 것이 제격이고 이곳에서 월북 작가들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면 좋을 듯싶다.

기념관 건립은 우리 문인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기념관이 세워지면 벽초뿐 아니라, 그 아들 홍기문, 손자 홍석중의 문학까지 남과 북에서 쓰여진 작품이 다 모여 분단문학의 복원이 이뤄지는 셈이 된다. 벽초의 문중은 현재 괴산에는 거의 없고 충주와 서울에 흩어져 있어서 얼마나 협조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민간 차원의 모금운동이 어려울 경우 정부의 지원을 받아서라도 홍명희 문학기념관 건립이 꼭 이루어지길 소망한다.

홍현희 /소설가(필명 헨리 홍) 백석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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