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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14 00:02 수정 : 2006.07.14 00:02

신창현 /환경분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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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청장이 지난달 27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2차 공청회의 단상을 점거하며 무산시킨 사람들을 법대로 조처하겠다고 밝혔다. 공청회는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소통하는 자리인데 왜 한쪽은 저지하고 다른 쪽은 강행하려 했을까?

갈등에는 내용적 갈등과 절차적 갈등이 있다. 내용에는 좋은 내용과 나쁜 내용이 있고, 절차도 좋은 절차와 나쁜 절차가 있다. 이것을 조합해 보면 네 가지 유형의 갈등이 나온다. 첫째, 좋은 내용과 좋은 절차가 만나면 갈등은 발생하지 않는다. 둘째, 나쁜 내용이 좋은 절차를 만날 경우 나쁜 내용을 수정·보완하여 좋은 내용이 되는 생산적인 갈등이 된다. 셋째, 좋은 내용이 나쁜 절차를 만난 경우 비용과 시간을 낭비하는 소모적인 갈등이 된다. 넷째, 나쁜 내용과 나쁜 절차가 만난 경우 당장은 은폐하거나 억압할 수 있지만 나중에 한꺼번에 폭발하는 파괴적 갈등이 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도, 분야에 따라 유리한 내용도 있고 불리한 내용도 있을 터이다. 내용을 대상으로 삼은 갈등은, 협정으로 예상되는 편익이 손실보다 크다고 생각하는 찬성 쪽과 손실이 편익보다 크다고 생각하는 반대 쪽이 각각 이용하는 정보와 자료 등 사실관계의 차이 또는 동일한 사실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공청회와 토론회 등은 정보를 공유하고 관점의 차이를 좁히거나 해소하는 좋은 절차로 활용할 수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나쁜 절차로 악용될 수도 있다.

절차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기준을 세 가지만 든다면 첫째, 절차의 틀이다. 상호불신의 경쟁구도에서 이루어지는 공청회나 토론회는 서로 필요한 사실만을 선택하여 주관적 경험과 가치관을 토대로 해석하기 때문에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절차가 된다. 반면에 상호 신뢰에 바탕을 둔 협력구도에서 이루어지는 공청회나 토론회는 서로 견해 차이를 인정하고 상생의 대안을 모색하므로 생산적인 절차가 된다.

둘째, 사람이다. 협상의 원칙 중에 ‘문제와 사람을 분리하라’는 원칙이 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의 견해와 이해관계를 무시하고 대화의 상대방에서 배제하거나 마주앉은 사람을 공격하는 절차는 나쁜 절차다. 반면에 찬성 쪽과 반대 쪽이 문제해결 과정에서 상호신뢰의 협력관계를 형성하는 절차는 좋은 절차다.

셋째, 공정성이다. 정보와 자료를 독점하고, 결정한 후에야 참여의 기회를 주며, 선수가 심판까지 보는 절차는 나쁜 절차다. 반면에 정보와 자료를 공유하고, 타당성 검토과정부터 참여하며, 선수와 심판을 분리하는 절차는 좋은 절차다. 갈등관리의 선진국들은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부서와 공청회, 토론회 등을 주관하는 부서가 다르다.

신뢰는 상호 관계다. 정부는 국민들이 믿고 맡겨주지 않는다고 억울해하지만, 정부도 협정에 반대하는 국민들을 신뢰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정부가 국민을 불신하면 국민도 정부를 못 믿는다. 불신의 악순환을 깨는 방법은 정부가 먼저 정보를 공개하고, 반대 쪽의 처지와 이해관계를 존중하며, 반대하는 사람들도 협상팀에 합류하여 우리나라의 협상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정부와 국민이 서로 신뢰할수록 협정으로 말미암은 비용은 줄고 편익은 늘어난다.

신창현 /환경분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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