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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17 18:07 수정 : 2006.07.17 18:07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국제정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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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은 어느 모로 보나 시기상조다.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치밀한 분석과 면밀한 준비를 거치지 않고 졸속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은 약간의 관심만 기울이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무릇 ‘순서와 속도 맞추기’는 개방정책 성공의 절대 원칙이다. 국내의 수용 및 관리 능력에 맞추어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개방만이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과도한 사회적 비용의 지출로 인해 개방은 오히려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그리고 상당 부분 우리 정부가 동의하고 있는, 소위 ‘높은 수준의 포괄적 자유무역협정’은 사실상 높은 수준의 경제통합을 의미한다. 이러한 협정이 그것도 비교적 단기간 안에 체결된다면 우리 사회와 정치는 심각한 불안과 혼란 상태에 빠져들 것이 자명하다. 순서를 무시한 채 급속도로 진행되는 세계 최강대국과의 무모한 경제통합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저항과 반발이 대규모적이며 치열할 것임은 너무나 당연하다. 강력하고 급격한 외부충격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는 경제주체들은 농업뿐 아니라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 우리 산업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나, 그들의 걱정을 덜어 줄 사회안전망이나 복지 그리고 보상체계의 수준은 매우 저급한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분담 없이 모든 피해와 손실을 홀로 감당해야 한다는 절박감은 이들을 벼랑 끝으로 몰 수 있다. 그렇다고 정부와의 대화 통로가 열려 있어 자신들의 처지를 하소연하고 대안 모색을 강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부와 사회를 연결시켜 주어야 하는 정당들은 제 기능을 못하고 있고, 비정당적 채널인 공청회나 위원회 등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 결국 남아 있는 자구책은 시위, 파업, 파괴, 폭동 등 소위 ‘강압적 통로’의 활용뿐이다.

굳이 지금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낮은 수준의 제한적 협정’이어야 한다. 즉 가능한 한 많은 유예품목과 예외조항 등을 만들며 자유화의 이행기간도 최장기로 잡아야 한다. 우리의 수준과 사정에 맞는 ‘맞춤형 협정’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 문제는 높은 수준의 포괄적 자유무역협정으로 가겠다는 정부의 독주를 누가 막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소속 의원들 간의 선호 차는 있겠으나, 양대 정당인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공식적으로 정부의 입장을 찬성하고 있다. 반대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당은 군소정당에 불과하다. 이들이 구성하고 있는 국회에 큰 기대를 걸 수도 없다. 대략이 아니라 매우 난감한 사정인 것이다.

그런데 희망은 오히려 정부 내에서 비쳐졌다. 보건복지부가 약제비 적정화 방안은 국민 건강과 직결된 사안이며 건강보험의 재정 건전화를 위해서도 철회할 수 없다는 방침을 고수함에 따라, 이의 시정을 요구한 미국과의 정면충돌로 한-미 자유무역협정 2차 협상이 파행으로 종료된 것이다. 유시민 장관은 협상에 나가는 실무자들에게 “여기서 더 물러선다면 옷 벗을 각오 하라”고 했다고 한다. 장관이 희망이었다. 장관의 결단으로 지킬 것은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에게 이러한 장관들은 아직 더 많이 있다. 예컨대, 법무부 장관은 우리의 정책 자율성을 훼손시킬 수 있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를 막아낼 수 있다. 농림부와 산업자원부 그리고 정보통신부와 노동부도 각기 지킬 것이 상당하다. 이제 이들 장관들에게 희망을 걸어본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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