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태 /상지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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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전국 곳곳에서 물난리가 났다. 심지어 ‘물폭탄’이라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되고 있을 정도이다. 졸지에 집과 재산과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전국 곳곳에서 메아리치고 있다. 괴롭다. 왜 여름마다 이 끔찍한 수재가 반복되는 것일까? 수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와중에 래프팅을 즐기거나 분뇨나 폐수를 방류하는 철면피들이 나타났다. 세상에 나쁜 자들은 있기 마련이라지만 이렇게 뻔뻔스러운 자들은 아무래도 없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무서운 자들은, 수재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상황을 이용해서 거대한 이익을 챙기려는 토건세력이다. 토건세력은 마치 수재를 기다렸다는 듯이 대형댐을 더 지어야 한다고 외치고 나섰다. 해마다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올해는 그 강도가 한층 세졌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적극적으로 가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은 ‘대형댐 부족’에 수재의 책임을 전가하는 동시에 대형댐 건설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박정희식 토건국가 정책을 강력히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야말로 수재의 주범이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크기가 세계 109위지만, 대형댐 보유국으로는 세계 7위다. 국토의 많은 면적이 물에 잠기고 물의 흐름이 왜곡되어 다양한 생태적, 사회적 문제들이 생겼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수만명의 지역주민들이 대형댐에 맞서서 힘겨운 생존투쟁을 벌이고 있다. 토건세력은 다시금 동강댐과 한탄강댐의 건설을 요구하고 나섰다. 동강댐 계획은 엉터리 환경영향평가의 표본처럼 알려져 있고, 한탄강댐 계획은 기초조사조차 엉터리로 했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다. 두 댐을 짓는 것은 토건세력의 이익을 위해 막대한 세금을 탕진하고 길이 후손에게 물려줄 아름다운 자연을 영원히 파괴하는 것이다. 올바른 생태적 치수정책은 산과 물의 연관, 물과 물의 연관에 대한 체계적 인식에서 비롯된다. 이 점에서 대형댐뿐만 아니라 하천의 시멘트 직강화도 큰 문제다. 이 때문에 상류의 물이 급격히 하류로 흘러 들어가서 수재가 커지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에 경기도 북부의 문산이 모두 물에 잠겼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무엇보다도 큰비가 오면 물에 잠길 수밖에 없는 곳, 즉 본디 물이 흐를 땅인 곳을 무리하게 개발하는 것도 엄중히 금지하여야 한다. 물의 땅을 무리하게 개발하는 것은 커다란 수재를 자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투기적 행태를 규제하려면 전국 모든 하천의 ‘홍수지도’를 작성해야 한다. ‘홍수지도’는 많은 혈세를 아끼고, 자연을 지키고, 수재를 줄이는 좋은 장치가 될 것이다. 박정희식 토건국가 정책에 기대는 열린우리당은 한심한 수준을 넘어서 안쓰럽기까지 하다. 부패와 부실과 파괴를 구조적으로 생산하는 토건국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만이 매년 1조9천억원의 세금을 잡아먹는 수재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렇게 막대한 수재예산을 노리고 날뛰는 각종 개발공사 등의 토건세력이야말로 수재의 주범이다. 이 아까운 세금을 복지예산으로 써야 옳지 않겠는가?홍성태 /상지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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