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31 20:45
수정 : 2006.07.31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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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천 /전국귀농운동본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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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최근 농림부는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해 1955년에서 63년생까지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의 절반 이상(56.3%)이 은퇴 후 전원생활을 희망하고 있으며, 2013년까지 수도권 외의 지역에 전원마을 300여곳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현 정부는 도시민의 농어촌 정주지원이라는 방향을 잡아 ‘농어촌 복합 생활공간 조성방안’ 등을 수립하고 있다. 이제 농촌에 새 희망이 솟아나고 있는가? 정부와 도시민들과 함께 고민할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농촌과 농업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관점이다. 농촌이 농촌이려면 그 생존기반인 농업이 든든하게 떠받쳐줘야 한다. 농업은 회생불능으로 무너진데다 내일마저 신자유주의 폭우에 잠겨버린 오늘이다. 자칫하면 농업의 가치와 존재의의를 뒷전에 밀어둔 채로 설계하는 농촌과 전원생활일 수 있다. 농촌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농민들의 절규와 무심한 자연이 공존하는 농촌의 부조리한 현실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귀농은 그 현실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내일의 농업이 없으면 내려가 살 만한 농촌도 없다.
둘째, 또다른 농민 소외 문제를 걱정한다. 행여나 이제는 농촌의 모순을 풀 주체가 도시민과 도시 자본이라고 생각한다면 심각한 오만이다. 물론 지금부터라도 더 많은 도시민들이 농촌에 들어가 살기를 바라지만, 농촌에 들어오는 사람과 자본은 익명성과 도시 의존성을 벗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농민들과 함께 새로운 삶과 공동체의 빈자리를 채우고 풍성하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오늘 농촌의 피폐는 농민 탓이 아니다. 도시민은 농민들을 거들면서 더불어 함께 내일을 모색해야 한다.
셋째, 정부는 손쉬운 개발사업보다 농촌생활 여건 개선을 길게 보고 추진해야 한다. 전원마을 조성계획은 바람직하더라도 강조하는 순서가 잘못되었다. 보건소를 없애거나 마을의 뿌리인 학교를 폐교시키는 등 효율만을 좇는 일부터 멈추고 재검토해야 한다. 농촌의 교육·의료·복지·문화 등 삶의 질 향상에 최소한의 시스템을 갖추는 작업은 아주 느리고 작은 규모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이는 정부가 건설사업보다 몇 백 배 집중해야 할 공공의 영역이다. 이번 조사에서 농촌으로 내려간다면 지역사회 발전에 봉사하겠다는 응답이 97.3%에 이르렀다. 이주한 도시민의 역량을 살릴 수 있는 마당을 넓혀야 한다.
도시민 과반수가 농촌생활을 꿈꾸는 것은 도시의 실패를 방증하는 동시에 연대와 희망의 징조라고 믿는다. 그러나 농촌생활은 농촌에 가서 완전히 새로 짜야 한다. 도시에서 보이는 농촌과 실제 농촌은 다르다. 귀농을 위한 여건과 농촌살림은 상상 이상으로 힘겹다. 낭만적인 꿈과 투자와 산출의 계산은 우리 농업·농촌의 현실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귀농은 마을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사람은 우리 마을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날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각오하되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농촌에 사람이 필요하므로 귀거래사는 절실하다. 은퇴 뒤든 당장이든 농촌에서 또다른 삶을 펼칠 수 있도록 사회적 여건을 조성하는 일 또한 절실하다. 그러나 오늘의 농촌은 마냥 기회와 약속의 땅이 아니다. 너무도 치열한 현장이다.
이진천 /전국귀농운동본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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