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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15 21:31 수정 : 2006.08.15 21:31

문만기 조선왕조실록환수위원회 실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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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의 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이 1913년 일제에 강탈당해 1923년 일본 간토 대지진 때 대부분 불태워지고 제국주의의 상징인 도쿄제국대학 도서관 지하 수장고에 방치된 지 93년 만인 지난달 47책만이 민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실록은 472년 17만2천여일의 역사를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한 보고이다.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환수위)는 1년여 준비 끝에 올해 3월 불교계, 민족문제연구소, 정치권, 북조선 불교도연맹, 재일동포 등 남북한 동포가 자발적으로 꾸린 민간모임이다.

우리나라는 그리스, 이집트, 베트남, 중국 등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약탈문화재가 많은 국가군에 포함된다. 언제 어떤 경로로 몇 점이 반출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세계 20여개 나라에 10만여 점 이상의 국보급 문화재가 떠돌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의 문화재 대량 유출과정은 크게 나누어 임진왜란, 구한말,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과거의 슬픈 역사와 궤를 같이하고 있으며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그 양상이 체계적이고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자행된 약탈의 배경은 20세기 초 독일 역사학자 레오폴트 폰 랑케 등에 의해 주도된 서구의 실증사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주관적 판단 없이 역사적 사실을 실증 그대로 기술해야 한다”는 이 이론은 제국주의에 의해 악용되었는데, 특히 일제는 강점기 동안 우리 민족의 역사서 등 유물들을 조직적으로 파괴하고 역사적 근거들을 말살하여 왜곡된 식민사관을 체계적으로 고착화시켰다.

그 대표적인 예로 1910년 이후 조선총독부 산하에 취조국을 두고 중요 유적과 역사서들을 조사하여 1년여의 짧은 기간 251종 20만권 정도의 우리의 귀중한 역사서들을 강탈해갔으며, 가져가지 못한 유적과 수십 만 권의 역사서들은 지속적으로 불태워지고 파괴되었다. 일제는 또 1922년 12월 ‘조선사편찬위원회’를 만들고 1938년까지 35권에 이르는 왜곡된 〈조선사〉를 편찬하였다.

이러한 역사왜곡 프로젝트는 이마니시 류 당시 경성제대 교수와 대표적 친일식민사관 이론 형성의 주역인 이병도 등이 주도했고, 그 배후에는 도쿄 제국대학이 있었다. 해방 이후 이들이 현 서울대에 진입하면서 한국 역사학계의 주도적 학풍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우리 역사의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세계적으로, 문화재 환수방식은 소송 및 회유 이외에도 자발적 기증이나 경매를 통한 구매 등 다양한 모형이 있다. 최근에는 유럽을 중심으로 문화재 반환의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자발적 반환이 늘고 약탈의 상징인 박물관 제국주의가 급격하게 해체되는 추세에 있다. 그러나 이런 외형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국보급 문화재 환수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며 정부와 민간부문의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철저한 사전조사로 환수의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등 차분하게 접근하여야 하며, 국민 감정에만 호소하거나 무조건 사들이는 방법은 중국의 사례가 잘 보여주듯이 장기적으로는 우리에게 득이 되지 못한다. 최근 ‘조선왕조실록 되찾기 국회의원 모임’ 소속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체계적인 해외 반출문화재 조사 및 환수를 위한 법률제정을 서두르고 있다는 소식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100년 전 일제가 만들어놓은 치욕적인 식민사관의 틀 안에서 민족의 장래보다 우물 안의 학벌 권력에 사로잡혀 우리 당대가 해야 할 역사적 소명들을 유기하지 않았는지 성찰이 필요하다.

문만기 조선왕조실록환수위원회 실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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