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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21 20:53 수정 : 2006.08.21 20:53

김정기 제주교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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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전 교육부총리의 교수 시절 자질 시비가 태풍이 돼 대학교수 사회의 도덕적 기반이 침몰하는 위기를 맞고 있다. 그는 논문 부조리(표절, 중복게재, 연구비 이중 수령 등) 혐의를 공격적으로 해명했으나, 생각의 다양한 편차를 노출하는 각종 언론 및 시민·교육단체가 하나되어 쏟아내는 ‘여론폭탄’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를 지탱하던 청와대도, 그가 재직했던 대학교 총장과 교수들도 완전히 체면을 구기게 됐다. 그러나 이런 비난 여론의 유탄에 타격을 받은 곳은 정작 다른 곳에 있었다.

제주에서 알고 지내는 어느 학부모는 나에게 “최근까지 교수님들을 하늘처럼 우러러봤다. 그러나 대학 총장 선거 때 박터지게 싸우더니, 이번에는 남의 글을 자기 것처럼 베껴 쓰고, 논문 수를 속여 돈을 타는 이런 행태가 사기 아니냐. 시정잡배도 이들보다 낫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학부모의 말에서 드러낸 비유 앞에 나는 항복하고 말았다. 김 전 부총리의 ‘관행’ 운운하는 해명이 마른 섶에 던진 불씨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다 교수의 ‘권위’가 ‘시정잡배’보다 못하게 전락했을까. 한마디로, 대학사회에 만연한 윤리의식의 부재 때문이다. 일본의 철학자이자 고고한 공산주의자 후지타 쇼조가 지적하다시피, 윤리는 반성 능력과 자기비판 능력을 기초로 하는 내부의 제동장치를 말한다. 학내 부조리가 발견되거나 그 징후가 농후할 때 자기반성을 통해 부정비리를 척결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자동제어장치가 우리 대학사회에는 부족하다. 김 전 부총리 파동에도 대학가가 거의 침묵하는 현실이 그 방증이다. 학교의 부정, 재단의 비리, 교수의 비행을 덮어서 ‘명예’를 지키려는 학교 권력과 교수들 사이 음험한 상호 의존성이 ‘관행’으로 굳어졌다. 국립대 총장 선거나 사립대학의 재단 전횡도 이런 관행을 유지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광복 이후 60여년 동안 대학의 가치 지향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대학들은 우리 전통의 선비정신과 서양의 학문 전문성을 변증법적으로 융합하는 데 실패했다. 유교사상의 한 축으로 순백의 청렴성·고결성·탈정치성(관리 진출 억제)을 핵심 덕목으로 삼는 조선시대의 선비정신은 고루하다며 배척됐고, 서구학문의 전문성은 윤리의식이 증발된 기능적인 전문성만으로 무장해 대학을 점령하고 말았다.

요즘 막스 베버의 학문관이 새롭게 떠오른다. 요약하면, 학문의 성과취득은 시간의 길고 짧은 경과를 무시한 외곬의 열정에다, 이 열정의 전제조건인 영감과 착상이 포괄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 전 부총리 파동은 단지 파동으로 소멸될 게 아니라 지적 퇴폐에 함몰된 대학교를 정상궤도로 진입시키는 역기능의 창조적 계기가 돼야 한다. 따라서, 이 파동 여파의 해결 주체는 마땅히 대학이어야 한다. 연구윤리법이나 연구실적 관리 조직 등 제도적 보완보다 더욱 급한 것이 있다. ①논문 부조리에 대한 대학의 실태조사와 자기비판의 결과물 공표 및 실천 ②대학원생들에게 논문 작성법의 필수 교육 ③신임 교수 채용 때 논문의 양보다 질 우선 ④결과물 공표 이후 비리 재발 교수에 대한 처벌 등이 그것이다.

교육부가 이런 사항의 실천 결과를 고려해 연구비 지원체계를 전면적으로 수정한다면, 이번 파동은 오히려 창조적 학문을 확대재생산시킬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극도의 생활고 속에서도 문장의 종결어미 한 개를 고쳤다며 중국의 권위지 〈중화보〉에 집필을 거절한 망명객 단재 신채호의 일화가 부끄러움의 심연에서 방황하고 있는 우리 학계에 구원의 빛이 됐으면 한다.

김정기 제주교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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